연합의 조건
정치적 정체성의 차이. 이번 단일화 논의에서 걸림돌의 바탕이 되는 보이지 않는 근거이었을 터이다. 정치적 새살림을 차릴 때 그 근거는 정체성의 차이. 그러나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눈에 그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 어렵다. 두 사람 정치적으로 뭐가 다른데? 찬바람 쌩쌩 불 때 운동하는 사람들 정체성 열심히 따졌다. 주요모순을 무엇으로 보는가. 민족모순? 계급모순? 그래서 너는 엔엘, 나는 피디. 그렇게 많은 계보들이 생겨나고 계보들 사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벽들이 생겼다. 모든 차이들이 정체성으로 환원되었다. 우리 편(파)이면 모두 용서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피와 아, 적과 동지, 진리와 거짓이 절대적으로 구분되어야 살아남을 수가 있는 시국이었으니까. 87년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YS. DJ 진영을 갈라놓았던 정체성의 이름은 ‘독자후보(독후)’와 ‘비판적 지지(비지)’였다. 그러나 독후와 비지의 정체성의 차이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규정하는 사람은 지금껏 없다.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건 정체성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략적 선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도적 민주화가 만들어진 87년 이후 정체성의 색깔이 엷어지기 시작했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엷어진 공간에 시민운동이 등장했다. 운동의 영역이 폭발적으로 다양해졌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정체성 논쟁이 흐물해졌다. 이념적 정체성이나 관념적 성격보다는 운동이 갖는 사회적기능이 강조되었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이런 경향은 촛불에서 확연해졌다. 조직의 정체성보다는 자발적 개인들의 참여가 중요한 차이가 되었다. 연합의 조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지형으로서의 선거연합 울산과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선거연합은 새로운 돌출구를 보여주었다. 전세를 뒤엎을 유일한 방법이 단일화로 보였다. 희망의 단서가 연합이었다. 그러나 이번 6월 선거에서 선거연합/단일화는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선거 공학적 수사가 아니다. 반MB연합으로 끝나는 이벤트를 넘어서는 것으로 필자에게는 보인다. 이명박 시대의 종언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질서이고 문화이다. 새로운 정치지형이 내적, 외적 조건과 조응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지형에서 정치적 정체성의 절대적 위력이 사라졌다. 정당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주장은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된다. 아니 정당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정체성의 강조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판단된다. 차이의 강조에서 다양함의 강조로. 이번 성남에서의 시장후보 단일화는 이런 경향을 대변한다. 민주노동당이나 국민참여당이나 정당정체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정당 아닌가? 새로운 지형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평가되어야한다. 후보단일화는 선거연합의 시작일 뿐이다. 성남에서 시장후보 단일화가 성취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 반생명, 반환경을 심판하고 지난 8년 한나라당 집권의 각종 스캔들에 노출된 성남의 변화를 갈망하는 개인과 조직들의 희망들이 모여 만들어낸 단일화이다. 그러나 후보단일화는 선거연합의 시작일 뿐이다. 연합에 참여한 정당이나 조직들의 구성원들의 연합, 나아가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연합이 그 완성이 되어야한다. 이제 민노당이나 민주당의 정체성을 선거기간동안 괄호 치자. 아니 일시적 괄호 치기를 넘어서서 차이들을 횡단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그 새로운 흐름만이 그들의 희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남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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