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예산삭감→공부방 폐쇄→아동 해산

1년간 고작 300만원 지원…공부방 문 닫으라고요?
공부방 간 생존경쟁 부추기는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김인철 시민기자 | 기사입력 2010/07/22 [17:29]

평가→예산삭감→공부방 폐쇄→아동 해산

1년간 고작 300만원 지원…공부방 문 닫으라고요?
공부방 간 생존경쟁 부추기는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김인철 시민기자 | 입력 : 2010/07/22 [17:29]
정부의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성남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직적인 평가거부 선언을 하면서 개선방안과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등 마찰이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은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신흥동 푸른학교 시설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본지의 시민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인철 선생님이 지난 19일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한 글이다. ....<편집자 주>
 
성남의 한 지역아동센터(청소년 공부방)에서 5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여름방학이 코앞이라 방학에 아이들과 진행할 프로그램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그 첫번째 프로그램으로 이번 주 수요일부터 아이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역사 기행을 떠난다. 말이 쉬워 제주도 역사 기행이지 막상 캠프를 가려고 하니 예산이며 항공, 선박, 보험, 숙소 등등 이것저것 확인하고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런 나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제주도’라는 한마디에 연일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다.

여름캠프,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예산이다. 2박3일 일정에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찮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대며 고민을 해도 필요한 경비에서 백여만 원이 모자랐다. 이제 와서 취소하고 다른 곳을 찾기도 애매하다. 모자라는 예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이 방송과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교장들의 수학 여행비 횡령 사건을 접했다. 그저 웃음만 나왔다.

보통 지역아동센터는 정부(보건복지부)에서 운영비를 지원 받기 때문에 학부모들에게 급식비와 수업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수업료를 받지 않다 보니 돈이 많이 드는 여름 캠프나 야외 학습을 진행하는 데 매번 어려움이 따른다.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운영비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지역아동센터는 CJ 나눔재단이 운영하는 ‘도너스 캠프’에 제안서를 올리거나 'KT&G' 같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복지재단을 통해서 후원을 받는다. 물론 캠프처럼 경비가 많이 드는 경우는 학부모들에게도 참가비 일부를 받는다. 이번 제주도 캠프도 참가비를 받고 있다.

다행이 몇몇 분들이 후원해 주셔서 예산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제 무사히 다녀오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정말 큰 고민은 이게 아니다. 올 초부터 다시 지역아동센터 평가제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에서 2010년 평가제 관련 지침이 내려오더니 얼마 전엔 구청에서 7월 20일까지 평가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메일이 왔다. 평가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 내년(2011년) 운영비 지급을 중단한다는 엄포성 문구와 함께 말이다. 20일이면 당장 내일이다. 바로 캠프 떠나기 전날이다. 최악의 경우 이번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캠프가 될지도 모른다.

▲ 올 5월 있었던 서울지역아동센터 대표자회의 기자회견 모습.(출처;노동세상)     © 성남투데이

고개 갸우뚱하게 하는 지역아동센터 평가지표

구청이 보낸 메일을 보고 착잡했다. 올해도 평가제를 받아야 하나? 작년 평가제 준비로 마음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평가제를 준비하며 거의 두 달간을 지침에 따른 서류를 작성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물론 평가제가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갖춰야 하지만 몰라서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갖추지 못했던 서류들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 공부방 교사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올해 평가지표를 보니 작년보다 항목이 더욱 세밀해지고 까다로워졌다. 당장 실무자인 내가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항목들이 많았다.
 
올해 초 지침으로 6개월(1월~6월) 평가를 한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그때도 평가 지표는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출석부 같은 자료를 내라고 한다. 무슨 뜻이냐면 실무자들이 소설(?)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왜 미리 평가 지표를 알려주지 않고 닥쳐서야 평가 지표를 내려보내는 걸까. 최종적으로 내려온 평가편람을 보니 4~7월(4개월)로 수정되어 있었다.

또 아동 및 서비스 영역에서 아동 모집 및 출석 중 '이용아동 구성의 적절성' 또한 실무자를 어렵게 한다. 작년(2009년) 기준으로 장애 아동은 1.5점, 수급자 1점, 기타승인 0.5점식으로 점수가 매겨져 있다. 이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설 입장에선 점수가 낮은 아동은 자연스럽게 기피 대상이 된다. 이것은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동과 학부모 인권의 문제다.

아동 이용 기준도 문제다. 이는 작년 평가 때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은 사항이다. 평가에 따르면 서류상 자격(수급자, 차상위, 한부모, 다문화 가정)이 있는 아이들만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 서류상 자격으로만 한정해 버리면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물론 '기타 승인 아동'이라는 항목이 있지만 이 역시 교사가 직접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난 번에 열린 공청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논의됐고 일부 수정됐다고 알고 있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중복되는 서류들도 많다. 사례관리 중 관찰일지, 아동 상담일지, 가정 방문일지는 중복되는 부분이다. 특히 '아동 건강 진단서' 같은 경우는 이미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상호간 업무 연계로 처리 가능한데 시설에서 건강 진단서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시설장 겸직 금지 조항도 문제다. 소도시나 도서 지역일수록 자격(보육교사, 사회복지사 2급)을 갖춘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특히 종교 법인에서 운영하는 시설인 경우 목사님이나 법인의 대표자가 시설장인 경우가 많은데 목사·대표와 시설장 겸직이 금지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교사를 구하기 어렵게 한다. 겸직 금지 조항이 꼭 필요하다면 예외사항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평가결과’와 ‘운영비’를 연계하겠다는 보건복지부 방침이다.
 
평가 거부 시 운영비 중단하겠다는 보건복지부

▲ 평가제 거부 서약서 전국 지역 아동센터 협의회에 제출한 2010년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거부 서약서다.     ©김인철
현재 성남시에는 48개의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48곳 중 33곳 지역아동센터가 평가 거부 서약서를 제출했다. 나도 거부 서약서를 썼다. 전국 단위 대책위엔 참석을 못했지만 지역에서 열리는 비상대책위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비상대책 회의를 참석할 때마다 모두들 근심이 한가득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불안하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할 기관은 평가제를 계속 거부할 시 운영비를 중단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다. 현실적으로 운영비가 중단되면 열악한 지역아동센터 대부분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구청에서 보낸 일상적인 공문 하나에도 벌벌 떠는 교사들의 심정을 그들은 알까? 하물며 운영비를 중단하겠다는 서슬퍼런 보건복지부 공문이라면 큰 맘 먹고 평가제 거부 서약서를 제출했다고 해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평가제 거부 관련 보건복지부 지침

-. 사회복지사업법 제43조에 근거한 사회복지시설 평가는 시설의 의무사항이며, 보조금을 받는 시설은 의무적으로 평가대상이 됩니다. 다만,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시설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보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받아야 하며, 평가를 신청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경우에는 관련법령에 따라 보조금 지급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일부 단체에서는 보조금 지원 중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으나, 내년도 예산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확한 정보제공과 유포는 결과적으로 지역아동센터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전지협(전국 지역아동센터 협의회)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다른 시도에서도 상당히 많은 시설들이 '평가제 거부 서약서'를 제출했다. 지자체별로 시시 각각 평가제 거부 서약서가 올라 오고 있다고 한다.

석달 동안 300만 원만... 공부방 문 닫으라는 건가요?

지역아동센터는 처음엔 민간 차원(공부방)에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IMF 이후로 실업 가정이 늘면서 공부방 이용 아동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 지역아동센터법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지역아동센터'가 됐다. 공부방 초창기 시절 교사들은 급여가 용돈 수준이거나 거의 무보수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오후에 아이들 급식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도 운영비를 지원 받지 못하는 시설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보통 30인 미만 시설의 지역아동센터인 경우 정부에서 받는 한달 운영비는 300만 원이다. 거기다가 작년 평가제로 받는 인센티브 20만 원을 포함하면 한달 운영비는 320만 원이 된다. 이 돈으로 상근 종사자 2명의 인건비, 프로그램, 시설 운영비를 나누어 써야 한다. 월세는 아예 운영비에서 못쓰게 되어 있으니 별도로 후원을 얻어야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운영비를 인상해 준 게 작년 하반기부터다.

작년 평가 결과가 나오고 성남에서만 2개 기관이 운영비를 삭감 당했다. 이 기관들은 1년 12달 중에서 석달만 100만 원씩 운영비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치면 그 숫자가 상당하다.

한 센터에 20명만 잡아도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렇게 삭감한 운영비는 점수에 따라 상위 5~15퍼센트 시설에게 '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지급됐다. 내가 속한 시설도 인센티브를 받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다른 지역에선 우수 시설에 지급된 인센티브를 걷어서 하위 5퍼센트 시설에 다시 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듯이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바야 한다.

혹자는 요 몇 년 사이에 공부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서 문제가 많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한 해 방임 아동은 102만 명에 이른다. 지역아동센터를 포함한 보육시설에서 보호받는 아동이 대략 20만 명 정도다. 얼추 계산해도 한해 80만 명에 달하는 아동이 방임 상태에 놓여 있다.

비근한 예로 최근 하루도 빠지지 않다 시피 보도되고 있는 아동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아동센터는 더 필요하다. 굳이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국적으로 지역아동센터가 3500개가 아니라 그 두배 혹은 세배가 된다 해도 아이들을 다 보호할 수 없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아동복지의 현실이다.

상위 5% 지역아동센터들이 평가 거부하는 이유

▲ 지자체별 평가 불참 지역 아동센터 수 7월15일 현재, 전국 시도 단위 별로 평가제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지역아동센터수다.     ©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내가 속한 시설도 작년 평가 결과 탁월은 아니지만 우수 시설로 인정 받았다. 작년에 하던 대로 아니 그보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필요한 서류를 갖춰 놓고 평가를 받으면 딱히 문제될 게 없다. 상위 5퍼센트에 들어가는 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많은 시설들이 먼저 앞장서서 평가 거부서를 제출하고 있다.

운영비를 받지 못할 각오를 하고서까지 평가제를 거부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하는 지역아동센터간의 불신과 경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덩치와 규모를 키울 것이 아니라 더욱더 지역 속으로 파고들어 혹시라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동복지를 실현해야 할 할 보건복지부의 정책이 사회복지의 최일선에 있는 실무자들에게 다른 어느때보다 더 큰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평가제를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적은 운영비지만 엄연히 국민이 낸 세금이다. 염치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보조금을 받는 모든 단체가 그렇듯이 지역아동센터도 철저한 관리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평가제는 꼭 필요하다.

문제는 평가 방법, 평가 지표, 절차, 시기, 심지어 평가 위원을 선정하면서 현장 실무자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요는 지금처럼 문제가 많은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평가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다른 복지시설인 어린이집이나 복지관처럼 3년에 한 번씩 평가하는 게 맞다. 이번 평가제를 끝으로 3년에 한번씩 실시하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으로 봐서는 믿을 수가 없다.

첫째, 차별적이고 비생산적인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작년 평가제는 문제점이 많았다. 그래도 수용하고 받았다. 중복되는 서류 등등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지적이 많았다. 올해는 그러한 부분들이 개선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평가 지표나, 기준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차별적이고 비생산적인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둘째,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하위 몇 퍼센트를 잘라내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두고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상대평가의 결과는 경쟁과 위화감 조성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지역별로 평가 점수와 결과가 달랐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86점이 우수시설이 되기도 하고 87점이 미흡시설이 되기도 했다.

셋째, 평가 결과와 운영비를 직접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
 
평가 결과와 운영비를 직접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 작년처럼 하위 5퍼센트를 솎아내서 운영비를 삭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작년 평가의 결과는 어떠했나? 간단했다. 운영비 중단. 결과는 폐쇄. 아동은 뿔뿔히 흩어졌다. 평가를 해서 미흡이나 문제가 있는 시설이 나온다면 그 기관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길이 사회복지 정책의 최우선이다. 평가 이후 컨설팅 같은 조치가 취재졌다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없다.

넷째, 지역아동센터 운영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이직율이 다른 복지 시설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신입 교사들이 들어오면 대부분 6개월을 못 버티고 그만둔다. 그나마 교사를 제때에 구할 수도 없다. 시설 한 개당 교사는 대부분 두세 명이다. 교사 한 명이 그만 두면 두세 달을 혼자서 버텨야 할 때도 많다.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실무자들의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내년 지역아동센터에 지원하는 운영비를 460만원 정도 책정할 거라고 하는데 일단은 희소식이다. 그렇지만 지난 번처럼 국회의 예산 결산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어 버리면 또 기약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면서 작년 평가제를 준비하면서 썼던 글을 첨부한다.


 #. 2009년 지역아동센터 평가제를 준비하며…

달콤한 휴가가 끝났다. 모처럼 기분을 낸 휴가 때문인지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휴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피곤은 항상 입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내 입안에 염증을 달고 살았다. 거의 석 달을 그렇게 보냈다. 때로는 다 포기하고 한 일주일 병원에 입원을 해버릴까? 싶을 정도로 나는 심신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몇 배로 일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방 교사가 되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적어도 일 년에 두세 번은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을 했다. 돌이켜 보니 지난 4년간 개인적으로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그런 가운데 이번 여름휴가는 짧지만 적어도 내게 육체적 평온은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런 평안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평가제를 준비하려면 심신이 모두 평안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게다가 휴가 이후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구러 미뤄둔 서류들이 책상 한 켠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9월에 있을 평가제다. 그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숨이 턱턱 막혔다. 온 세상이 (시커먼) 평가제의 얼굴을 하고 똘똘 뭉쳐서 나를 벼랑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필요하긴 하다. 아동을 보호하는 공부방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서류와 문서들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평가제일까. 혹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시작은 그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평가제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피곤하리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기껏 월 운영비 백여 만 원 더 올려준다는 명목으로 매순간 아이들을 고민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거의 두 달 가까이 한두 번 밖에 안볼 서류(?)에만 매달려야 한다. 아이들을 수급권자, 차상위, 다문화 가정 등등으로 구분 한 채 점수를 매기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수천 개의 공부방을 일렬로 죽 세워서 평가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들은 자기 관할 구역 공부방의 평가 점수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부방은 공부방대로 또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경쟁이다. 이건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평가의 기준이나 이유야 그럴듯하게 들려오지만 과연 우리 같은 실무자들의 생각도 그럴까? 긴 말 필요 없다. 평가제를 확실히 하려면 먼저 운영비 지원을 제대로 해야 한다. 최소 육백만원이다. 그러면 평가제 아니라 평가제 할아버지라도, 최소한 나는, 군말 안한다. 하지만 '예결위'의 고매하신 윗분들은 작년 연말에 지역아동센터에 증액된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림으로서, 최소한 나만이라도, 군말 없이 평가제를 따를 기회를 잃어버렸다. 공부방 교사는 자원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한 지자체 공무원의 말은 또 어떤가?
 
평가지표를 연다. 아이들 숫자를 세고 점수를 매겨본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방을 학원이라고 하지 공부방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지만 이해가 간다. 이렇듯 공부방을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일 텐데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의해서 1점, 혹은 0.5점 하는 식으로 점수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규정대로라면 앞으로 차상위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방을 다닐 수 없다. 다니려면 부모님들이 우리가 차상위에 들어간다는 증빙자료를 일일이 동사무소 직원이나 학교 기관장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와야 한다. 이건 평가제 이전에 학부모와 아이들 [인권]의 문제다. 며칠 전 평가제 때문에 급히 학부모 회의를 진행했는데 차상위 기준(건강보험료)을 말씀드렸더니 한 아이의 어머님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

평가이후의 상황은 또 어떨까? 상위 10퍼센트는 인센티브를 주고 하위 10퍼센트는 지원금을 깎거나 아예 중단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확인 안 된 소문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이 하달한 평가제 준비를 해야 하는 선생님들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주 수원에서 열린 평가제 교육을, 이때도 물론 수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음, 할 때 담당 공무원은 평가제는 올해가 처음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또 나중엔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말을 바꾼다. 평가제 교육은 공청회나 설명회가 아니라 거의 지침 하달 수준이다.
 
교육이 끝나고 나니 여기저기서 질문이 쇄도 한다. 질문자들의 표정은 다들 아연 실색이다. 담당 공무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몇몇 질문에 난색을 표하더니 시간이 없다며 궁금한 사항은 입구에 준비된 서면용지로 물으란다. 이미 자기들끼리 평가 지표, 방법, 기준 다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분위기다. 더구나 9월4일이던 서면 평가서 제출일이 8월25일로 당겨져 버렸다. 대충 헤아린다 해도 준비할 서류가 오십 가지가 넘는다. 나도 아연 실색이다. 우리만 몰랐던가? 시군구 보고를 먼저 해야 하니 거기에서 또 며칠을 당겨서 제출해야 함은 안 봐도 비디오다. 제출한 서면 평가서를 기준으로 현장실사는 9월중에 나온단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담당 공무원에게서 메일이 왔다. 20일까지 제출이란다. 비록 서면이지만 준비 기간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는 지금 주말인데도 사무실에 있다. 때로 나는 일벌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카뮈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은 무료하기라도 하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무실에 나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만 마음만 급할 뿐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진척은 없다.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가 하염없이 이런 넋두리를 해대고 있다.

9월11일, 오후 두시부터 평가를 받았다.
 
평가는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두 명의 평가위원들은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평가제의 취지가 공부방 운영을 잘하게 도와주기 위함이지 힘들거나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은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질문을 했다. 평가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였다. 그들은 평가 내내 고압적이거나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겸손했다. 하지만 수퍼맨이 되어야 하는 실무자들의 고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잠 못 이루며 긴장했던 시간들에 비해 한시간만에 끝나버린 평가는 허탈했다. 그들은 평가가 끝날 무렵 내게 평가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평가이후의 결과가 궁금했다.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단다. 하지만 평가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고 해서 지원금을 깎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일단은 안심이다. 그리고 후련하다. 확실하게 결정된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2009년 8월16일 씀,  9월12일 수정 


 
전지현, 과거-현재 일생 비교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