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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삶이 끊어지다

[문화/하다말다] 박연우의 사진

벼리 | 기사입력 2005/06/12 [16:45]

성남, 삶이 끊어지다

[문화/하다말다] 박연우의 사진

벼리 | 입력 : 2005/06/12 [16:45]
‘문화’라고 세칭하는 현상에 대해서 말하련다. 가능하다면 그 현상의 이면까지 캐보면서 놀아보겠다. 삶이 복잡하고 또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총체적인 어떤 것이라는 점에서 문화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삶에 가깝다. 문화는, 만약 삶의 목적이란 게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그 출발에서 문화를 소외의 형태로, 도구적으로, 곁다리로 치부하는 태도들은 수행의 과정에서 거침없이 침을 뱉을 것이다. 그럼 ‘하다말다’는 무엇인가? 우선 ‘이따금’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념할 수 없는 현실적 처지를 고려한 것이다. 다음으로 방법을 암시한 것이다. 이 코너의 매번 작업의 수행에서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나아감과 물러남, 나아가 전체적으로서 한계를 짓는 방식으로 문화적 현상을 다뤄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략이자 딴에는 전략적 유연함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제안 하나 한다. 쓸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해달라는 것이다. 매료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작업의 실마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이따금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그래 문화, 하다말다./벼리

 
▲ 금광동 현대아파트     © 박연우


회화에서 묘사화의 전통이 보여주듯이 사진은 그 의미값이 세계의 명증성을 보여주는데 있다. 사진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사실성이며 그것은 적어도 같음은 아니더라도 면밀한 비슷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땅의 기억전>에 출품된 박연우의 사진들은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란 형식을 빌렸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녀는 서로 다른 시점을 가진 두 장의 사진을 오우버랩시켰기 때문이다. 의도된 전략이다. 이 전략이 겨냥하는 효과는?
 
자신의 언술에 보는 이들이 연루되어 동일한 시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가 오히려 사진의 사실성을 박차면서 치솟는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명증성에 균열을 낸다. 세계가 아무리 익숙함, 반복 심지어 친근감을 느끼게 할지라도 그 세계는 명증하지 않다!
 
▲ 도촌동 사거리     © 박연우

바로 이런 의미가 오우버랩이란 전략으로부터 힘 있게 솟구쳐 나온다. 균열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그런 흐름에서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소멸이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단절 곧 현재는 과거의 단절로부터 오는 파괴의 의미로 구체화된다. 현재 시점을 가진 큰 칼라사진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과거시점의 작은 흑백사진이 전체적인 대비 속에 중심에선 오우버랩된다.
 
게다가 두 사진의 이미지는 어떤 유사함을 보여준다. 그녀에 따르면 작은 흑백사진은 큰 갈라사진에 나오는 장소와 같은 장소에서 1989년에 찍은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과거시점과 현재시점을 오우버랩시켜 현재가 과거의 완벽한 파괴에서 구성된 것임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이런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통해 보는 이들은 그 파괴의 심각성에 섬뜩해진다.
 
그녀가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장소는 다 성남에 있는 구체적인 장소이다. 금광동 현대아파트, 도촌동 사거리, 섬마을1, 섬마을2, 탄천이다. 이 가운데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과거시점의 사진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섬마을 1     © 박연우

1989년 금광동 현대아파트는 가난한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도촌동 사거리는 흙벽돌로 쌓은 토담집에 천진불 같은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섬마을1엔 오리가 한가롭게 논을 헤집고 다니다가 기우뚱기우뚱 논둑을 걷고 있었고 섬마을2엔 아마 지금은 삶을 마감했을, 어쩌면 할 일을 다했을 아주 늙은 촌로가 살고 있었다. 분당이 개발되기 전 탄천엔 남매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진술된 과거는 오우버랩된 같은 장소의 현재시점의 사진과의 대비 속에서,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의도적 배치로 인해 세계의 명증성에 대해 균열을 낸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삶의 파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보여준 것을 받아들이는 한 현재는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현재를 전복하려는 것이다. 현재는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라고까지 말하는 듯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진술이 가능하다.
 
2005년 금광동 현대아파트는 1989년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파괴했다. 자동차를 통해 성남과 분당을 잇는 도촌동 사거리는 그 곳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천진불의 소녀를 사라지게 했다. 그 소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섬마을엔 오리가 사라졌다. 그 촌로가 온전하게 물려줘야 마땅했을 삶의 터전도 지워져 버렸다. 분당 개발은 어린아이들의 물놀이의 즐거움을 빼앗아 버렸다. 탄천은 지금 폐수가 흐른다.
▲ 섬마을2     © 박연우

현재는 과거의 파괴이며 그 파괴는 곧 삶의 연속성의 파괴임을 그녀의 작업은 보여준다. 그것이 다른 곳이 아닌 우리의 삶의 터전인 성남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성남지역사회에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진지한 질문이란?
 
과연 지역사회가 개발의 망령에 사로잡혀 이렇게 함부로 삶의 연속성을 끓어내도 되는가? 삶의 구체적인 장소가 마냥 지워지기만 하는 지역사회, 삶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지역사회, 그런 지역사회가 과연 무슨 정체성이 있을까? 과연 어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까?
 
박연우, 그녀는 성남에서 오래 살아왔다. 성남사람이다. 또 성남이란 변방적 삶을 통해 개념적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 차원에서 그녀는 ‘장소의 의미’를 체득한 듯하다. 같은 장소들을 시차를 달리해서 찾아간 행위 자체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 행위는 예술로서의 사진작업이기 이전에 성찰적 삶의 기록적인 문화작업이다. 지역적 차원에서 삶의 문제를 사진영역에서 이렇게 실감있게 다룬 성남의 사진작가를 처음 봤다.
 
그녀의 사진작업에 높이 값을 매긴다. 다만 현재시점의 사진들이 과거시점의 사진들에 비해 산만하다는 점에서 보다 뚜렷한 대비효과, 보다 강력한 메시지 전달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을 흠결로 지적해둔다. 더 열심히 작업했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녀의 작업을 지역사회가 사회적 자본의 측면에서 넉넉히 수용해줄 것도 기대해본다. 어떤 의미에서 지역문화는 생산자보다 향유자의 수용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탄천     © 박연우

*. 기사에 덧붙이는 말: 사진가 박연우는 분당에서 '나무와 숲'이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남문화연대의 회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박연우의 사진은 <땅의 기억전>(6월7일-13일)에 출품되었다. 이 전시회는 경기문화재단, 경기민예총이 후원하고 수원민족미술협회가 주관해 수원미술전시실에서 열렸다. 성남과 수원의 민족미술인 또는 지역미술인들의 교류전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전시회는 ‘지역문화지형과 시각예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려 시각예술인들이 지역문화지형을 둘러싼 진지한 고민과 모색의 자리를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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