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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은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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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은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벼리의 돋보기〕昌의 ‘槍’

벼리 | 기사입력 2007/11/07 [23:30]

이회창은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벼리의 돋보기〕昌의 ‘槍’

벼리 | 입력 : 2007/11/07 [23:30]
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마침내 대선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에 이념적 스펙트럼, 정당적 이해관계의 차이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목소리들이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이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실은 한결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념적 스펙트럼, 정당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어라고 비판하든, 무어라고 비난하든 ‘이회창은 아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어떻게 한결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혹시 이런 반응이야말로 이 전 총재 측이 의도한 것은 아닐까요? 뒤늦게, 더구나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그로서는 다른 후보들 측의 한결같은 대립각을 불러일으켜 그에 대한 지지를 단속하고 나아가 그 외연을 확대하려는 극적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것이죠. 틀리지 않다면 그의 대선출마는 시작부터 대성공인 셈이죠. 이는 곧 드러날 지지율 변동으로 확인될 수 있겠죠.

▲ 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마침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사진제공;민중의 소리)     © 성남투데이

그러나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반대하기에 앞서 여러 후보들에 대한 신중한 고려를 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런 셈법이 관심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념이나 정당적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되는 단수로서의 우리가 아니니까요. 반대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차버릴 수도 있고 나아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개개의 인격들, 복수로서의 우리이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이 전 총재가 대선출마 선언을 통해 전한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따라서 완벽한 지도자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의 대선출마를 밝힌 기자회견 내용에는 굳이 이념적 잣대나 정당적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았다 해도 보는 이에 따라 이런저런 비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에서 말이란 그것이 아무리 온당하다고 해도 진리의 주장이 아니라 단지 발화된 가치의 주장일 뿐이며 따라서 이를 둘러싼 가치투쟁과 소동은 불가피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전달된 그의 메시지가 우리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소리이냐, 아니냐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기자회견을 접근할 때, 대다수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 포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처럼 꼴 같지 않는 대선판의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에 맞는 말인 까닭일까요? 아무튼 적실성(的實性)이 와 닿는 메시지로 잡힙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전 총재는 대통령이 될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신뢰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 지도자는 정부의 수반이라는 점에서 곧 정부에 대한 우리의 신뢰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권력으로서의 정부를 바라볼 때 우리가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그것의 대표성이 아니라 신뢰성입니다. 우리가 체험한 바로는 대의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대표성은 실제로는 거의 허구에 가깝습니다. 거기엔 우리의 의견이 낄 자리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면,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신뢰성으로부터 구해질 수 있습니다. 신뢰성을 얻지 못한 권력은 제 기능 예컨대 제재나 처벌, 보상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 전 총재는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신뢰성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서 그 가치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했습니다. 바로 이명박 후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요.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정권교체 자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 교체만 되면 된다, 대통령이 누가 되어도 나라는 저절로 바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환상이고 위태로운 생각입니다.”

둘째, 이 전 총재는 권력, 권력추구 행위가 갖는 의미를 지적했습니다. 권력은 보통 지배자의 통치 즉 지배권의 개념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권력 개념이죠. 이런 개념의 권력이 문제인 것은 이 권력이 전제적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돌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권력의 생산성, 안보야 상당히 유지는 될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권력의 고립을 의미합니다. 곧 정치 참여자들을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정치라는 것이죠.

결국 의견의 표출을 통해 각자의 가치를 주장하며 대화와 토론을 통과해야 하는 정치공동체는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 총재 식으로 말하면 “나라의 근간과 기초”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사태가 초래되는 것은 권력을 부정적 의미로 이해하고 권력  교체든, 권력 유지든 그런 의미의 권력을 추구할 때입니다. 이 전 총재의 지적은 제대로 권력을 이해하고 제대로 권력을 추구하라는 지적입니다. 이 역시 이명박 후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이지요.

“나라의 근간과 기초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정권교체가 되어야지 그러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는 데 경제인들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기본을 경시하거나 원칙 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자세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지닌 가치와 그 수용을 통해, 그의 출마는 우리 앞에 주어진 그의 출마 이전의 대선판에 중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출마의 근거는 구체적인 문맥을 확보한다는 의미죠. 이런 측면이라면 그의 출마는 우리에게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의 파기, 한나라당 탈당에 따른 무리를 뛰어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약속 파기에 대해 “엎드려 사죄하고 용서를 빈다”는 그 심정, 탈당에 대해 “분노하고 상처받는 당원 동지들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돌팔매를 달게 받겠다”는 그 심정이 결코 얕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전 총재는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 품격까지 갖춘 진정한 선진국”이란 말을 했습니다.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습니다. 웬일일까요? 우리의 마음 속 어딘가를 겨냥한 그의 예리한 창(槍)은 아닐까요? 이런 나라를 만들어가는 길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삶과 떨어지지 않는 정치적 행위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맑은 영혼을 지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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