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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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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벼리의 돋보기〕반동정치란 무엇인가

벼리 | 기사입력 2007/11/16 [11:31]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벼리의 돋보기〕반동정치란 무엇인가

벼리 | 입력 : 2007/11/16 [11:31]
한국정치는 지나치게 이념적이다. 이념으로서의 보수, 이념으로서의 진보로 가르기 때문이다. 왜 정치를 이념적으로 가르는가? 간단하다. 갈라야 네편 내편 싸움이 되고 싸워야 크든 작든 정치적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즉 이념적 구분은 ‘대결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중도를 표방하던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로 보수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중도는 급조된 어떤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활개치는 보수, 비틀거리는 진보’라는 조성된 대선구도로 인해 이른바 ‘반동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후보로서 국민검증에 순순히 응한다거나 적극적으로 나서기는커녕 정반대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왔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그제야 털어놓는 것도 이런 변명의 자세와 하등 다르지 않다. 찔러야만 나오고 나와야만 비로소 털어놓는 것이다.    ©성남투데이

이념으로 보수, 진보를 가를 수 있다 해도 모든 이념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현실이다. 현실의 삶은 설령 보수와 진보라는 두 극을 가정할 경우조차 두 극 사이의 무수한 편차, 복잡한 얽힘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서 보수, 진보라는 이념적 대결은 실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이념성을 강하게 비치는 진보의 구호들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 진보라는 이념적 구분은 실재하는 현실의 삶, 다양한 사태로 드러나는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도식에 불과하다. 도식이란 주어진 다양한 사태를 일정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 사변적으로 도입된다. 이런 점에서 보수, 진보라는 이념적 도식은 결코 현실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념에 사로잡혀 이념적 도식에 따른 반동정치에 대한 우려 표명은 올바르지 않다. 그것이 실은 여야라는 전통적 개념에 입각해 정치적 역학관계의 균형 곧 대결의 균형을 속내로 담아둔 것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정당정치다. 그러나 정당정치는 우리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중심으로 간주되기에는 그 체질이 여전히 너무 허약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당정치가 점점 더 분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유도 이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통해 결속된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퇴행의 길을 밟으며 스스로 약체임을 드러낸 여권이 우선 그렇다. 요 근래 지속적으로 세력을 확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잘 들여다보면 질적으로 삼분의 세력으로 등장한 한나라당 또한 그렇다. 여기에 또 다른 정치세력들이 가세한다.

우려할 만한 반동정치는 보수바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을 벗어난 정치행태다. 현재 구체적인 사태로 드러나는 어떤 정치행태야말로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을 뿌리 채 흔들어 상식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진짜 반동정치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명박 후보에게서 보는 것이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범법행위자인 자신의 비서관을 해외로 도피시킨 일,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BBK 주가조작 의혹, 아들딸의 위장전입에 이어 위장채용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해명되지 않는 의혹들 그리고 판명된 그릇된 행실들 때문이다. 그를 대통령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상식에 위배되고 우리의 상식이 용인하지 않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경향신문은 14일자 사설에서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이명박 후보”라고 지적했다.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우리의 인내심이란 분명 시험 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민심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이런 표현의 사설을 내보낸 것은 전적으로 그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후보로서 국민검증에 순순히 응한다거나 적극적으로 나서기는커녕 정반대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왔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그제야 털어놓는 것도 이런 변명의 자세와 하등 다르지 않다. 찔러야만 나오고 나와야만 비로소 털어놓는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부터 삶에 대한 태도에서 그가 유아론적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유아론적 삶의 태도는 위험하다. 자기를 자기로 존립케 할 뿐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리게 하는 공동체의 타자들을 배제하는 배타적인 태도인 탓이다. 하물며 공동체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공동체적 자기로서 자신을 정립해야 할 대통령후보임에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결코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공동체적 삶을 통해 배우고 익힌 일상적인 따라서 지극히 평범한 상식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상식은 가볍지 않다. 공동체적 삶을 통해 몸으로 알게 된 지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의 상식이 아니라 다수의 타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상식이다.

정치는 공동체라는 지반 위에 서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만 존립할 수 있다. 공동체를 떠나 존립할 수 있는 정치가 있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와 같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정치다. 이념적 보수바람이 반동정치가 아니다. 공동체의 상식을 비웃고 무효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야말로 진짜 반동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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