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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떠난 ‘통일서예가’

장애를 딛고 통일시를 쓰던 서예가 긴냇 권영환 선생 장례 거행

오인호 | 기사입력 2010/03/31 [10:08]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떠난 ‘통일서예가’

장애를 딛고 통일시를 쓰던 서예가 긴냇 권영환 선생 장례 거행

오인호 | 입력 : 2010/03/31 [10:08]
지난 29일 새벽 4시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통일서예가 긴냇 권영환 선생의 발인 예배가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서 31일 오전 7시 30분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의 주관으로 30여명의 가족, 친지와 주민교회 교인들 그리고 지역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 긴냇 권영환선생의 유해가 모셔진 분당 차병원 영안실 2호실.     © 성남투데이


이날 발인예배에 앞서 부인 이혜화 여사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혜화여사는 “하던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가서 아쉽다”며 “좋은 곳으로 갔으니 이제는 더 이상 그 분이 그곳에서 몸 불편하지 않게 살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고 추모했다.
 
▲ 고 권영환 선생을 위해 주민교회 교인들과 가족들이 발인예배를 드리고 있다.     © 성남투데이


또한 이날 발인예배에서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함께 부르자 권영환 선생의 부인 이혜화 여사는 참던 눈물을 끝내 터트리면서 오열했다.
 
한편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는 발인예배의 말씀을 통해 “하늘이 어떤 사람도 버린 사람은 없다. 버린 것은 사람이 세상을 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 하늘도 권영환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봄비가 장례식장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 성남투데이


이 목사는 권 선생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권영환선생을 처음 만날 때 그는 인생에서 가장 비참할 때 만났다. 오른 팔이 절단되고 다리는 절룩거리고 온몸이 파편을 맞은 사람처럼 되어서 왔다”며 “그러던 그가 왼손 하나로 운전을 배우고 재생의 시작을 알렸다”고 회고했다.
 
이 목사는 또 “그의 예술혼이 살아나고 자유를 향한 그의 용기는 힘있는 자들에게 가차없는 저항으로 살아났다”고 권선생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 통일시 서예가 긴냇 권영환 선생의 운구 행렬이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 화장로로 옮겨지고 있다.     © 성남투데이

이날 발인예배 후 권영환 선생의 유해는 성남시 영생사업소에서 오전 10시 화장을 했다. 당분간 긴냇 권영환 선생의 유골은 성남시 영생사업소에 안치될 예정이다.
 
49년생인 권영환 선생은 향년 62세이고 기존에 운영하던 ‘아름다움 만들기’의 운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 고 권영환 선생의 주검이 타오르는 가운데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미망인은 슬픔에 오열하고 있다.     © 성남투데이

그대 떠나는 길 위에
- 긴냇 권영환 선생을 추모하며 -

 
 
그날 펄럭이던 6월의 현수막 위에
그대의 뒷모습이 보이는구려
지금 황사먼지 사이로
그대의 웃음소리도 들리는구려 
 
그대 전기불에 만신창이된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시가
꺼져가는 통일의 불쏘시개가 된다면
역사는 말하리라
"그대 있었음에 내 살아 있노라" 

 
그대 떠나간 이 빈자리에
벗들의 눈물로 흥건하니
그저 왔다 간 것은 아니었으니
강퍅했던 그대 주저 말고 떠나라


우리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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