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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

[전시리뷰] 김태헌의 '김氏의 하루'

분다리 기자 | 기사입력 2004/07/08 [01:09]

'퇴!'

[전시리뷰] 김태헌의 '김氏의 하루'

분다리 기자 | 입력 : 2004/07/08 [01:09]

꽤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인사동. 늘 카오스 같고 사람 냄새 또한 그런 곳이지요.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쏟아지는 장마비. 우산 쓰고 걷는 일이 마치 물 위를 걷는 느낌입니다. 좋지요. 그저 즐겁습니다.
 
인사동을 찾은 것은 말하자면 어느 시점에서 다른 어느 시점까지 내심 소원함이랄까 거리감이랄까 하는 것이 있은 데다가 그 거리감이 기대감으로 자란 까닭입니다. 그렇게 생겨난 기대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인연이 미리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요.
 
▲ 퇴는 물러남이 아니라 열어밝힘이란 새로운 의미값을 가지고 다가온다.   ©우리뉴스

그래요.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왔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의 전시를 보러 왔습니다. 오픈 하는 날 그 사람도 보고, 그 사람 삶의 일부이자 흔적도 보러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예술이란 말이 포장의 의미이거나 사치인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사람의 환한 웃음이 반겨줍니다. 더불어 더러 얼굴을 익혔거나 이런저런 인연이 있은 얼굴들도 마주칩니다. 그 사람 그들과 함께, 때론 혼자서 전시된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기도 하고 눈웃음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따금 '심각한'(?) 느낌과 판단의 말들이 오가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작품은 '가볍다'는 말로 느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별스러움도 피우지 않고, 그저 손가는 대로 그리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쓰고, 그리고 쓰는 일을 마음가는 대로 섞고, 닿는 만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작품의 크기도 애기 같습니다. 예술이 별 게 아니라는 몸짓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 일상의 행위로 자리잡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볍다'는 느낌은 이중의 아슬아슬한 떨림입니다. 가령 가벼움의 상대어인 무거움이 가벼움 속에 녹아들어 가벼움의 상투적인 느낌을 지워낼 뿐 아니라 가벼움 자체가 가볍지 않음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 심지어 초시간적인 것조차 그저 별스럽지 않은 가벼움 속에 묻어납니다. 이런 의미값을 옛사람은 '平常心이 道'라는 말로 대신한 것이 아닐까요.
 
그 이중적 떨림의 가벼움을 보여주는 작품 하나를 억지로나마 읽어볼까 합니다. 그 작품은 주먹만한 화폭 위에 '退'를 그리고-쓰고, 화제랄까 낙서랄까 '열어밝힐 퇴'라고 붙였습니다. 물러날 퇴를 열어밝힐 퇴로 바꾼 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게 그거다 하면 그런 줄 알고, 그게 그게 아니다 하면 그런 줄 아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달리 말하면,
 
'분별 없애기!'
 
가 아닐까요? 그래서 퇴는 물러남이 아니라 열어밝힘이란 새로운 의미값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의미의 '전복'입니다. 이 때문에 짜릿한 통쾌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작품에서 물러날 퇴라는 한자와 열어밝힐 퇴라는 한글이 서로 충돌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물러남의 의미, 열어밝힘의 의미는 각각 극대화되거나 그럼으로써 서로 '연계된'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 사람이 이 작업을 하면서 절실히 사무치고 깨우친 바가 있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요. 예술이 별 건가요? 예술이란 이름의 관행을 깰 수는 없을까요? 삶이 별 건가요? 삶의 관행을 깰 수는 없을까요? 규칙을 깨는 것 따라서 결코 도덕적이지 않는 사유와 삶의 몸짓을 일상에서 녹여내는 것, 그것이 바로 퇴라는 작품에서 읽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더구나 얼마나 멋집니까! 한 글자 가지고 이런 작지 않은 의미값을 전하다니요! '한 글자의 관문(一字關)'이라 할만합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자, 입에서 침이 튀었습니다. 몸 밖으로, 세상으로,
 
'퇴!'
 
 
작가 김태헌 : '화난중일기'를 비롯, 여러 차례 전시/IMF시절 치른 전시 당시  '무데뽀 정신'이란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침/성남 태평동에서 꽤 오래 살다가 지금은 광주에 터를 잡음/ 겉은 아직도 멋있지만 속은 시골사람 다 된 듯함
전시 안내 : 김태헌/김씨의 하루/2004.7.7(수) - 7.20(화)/gallery FISH/02-730-3280

/www.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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