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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도 행복한 세상은 가능한가?

【서덕석 칼럼】 성남시민기업 ‘성남누리(지역화폐)’의 새로운 실험을 환영하며

서덕석 | 기사입력 2012/02/13 [06:11]

돈 없어도 행복한 세상은 가능한가?

【서덕석 칼럼】 성남시민기업 ‘성남누리(지역화폐)’의 새로운 실험을 환영하며

서덕석 | 입력 : 2012/02/13 [06:11]
▲ 서덕석 목사.     
성남을 살맛나게 만들려고 애써 왔던 사람들이 모여 지역화폐 <성남누리>를 시작키로 하고 2월 3일 그 첫 번째 설명회를 열었다. 마침 쏟아진 폭설로 상지골에서 옴쭉 달쭉 할 수 없어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지역화폐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내게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지역화폐(지역통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화폐는 국가가 공인한 ‘한국은행권’으로 불려지는 <원화>가 유일하다. 원화를 매개로 물품을 구입하고 가공, 생산하며 매매하고 임금을 계산한다. 그러니까 한국은행권이 없으면 아무것도 구입할 수 없으며 요금을 치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기가 십상이다. 화폐는 그 차제로써는 좀 질긴 종이조각이나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다른 물품을 구입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때 ‘교환가치’가 있기 때문에 귀중하게 대접 받는다. 우리가 백화점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부터 깍듯하게 인사를 받는 이유도 잘 생겼거나 신분이 높아서가 아니라 주머니에 든 현금과 현금처럼 꺼내 쓸 수 있는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돈을 가졌거나 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객으로 대접받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갖지 못한 사람이 무가치한 존재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 상황이 나빠 직장을 얻지 못한 젊은이들과 은퇴하고 일거리가 없이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소비할 현금을 갖지 못했다고 무시당하면 옳지 않다.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가치를 가졌다. 다만 그것을 현금으로 바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역화폐 운동은 국가화폐(한국은행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교환과 생산을 활성화시켜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경제공동체 운동이다. 지역화폐의 기본 원리는 소비를 촉진시켜 지역경제 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이 첫 번째요, 지역화폐에 대한 이자발생을 배제하여 갖고 있을수록 가치가 하락되게 함으로써 잠자는 화폐를 없애는 것이 두 번째 원리이다. 그러니까 많이 가지려할 것도 없이 그저 몇 개의 물품을 구입하고 버스 몇 번 타면 없어지는 정도의 액수를 갖고도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지역화페로 이루어지는 일상을 그려보자.

예를 들어 혼자 사시는 이웃 김 씨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다 팔아 일주일 몇 천원 벌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보잘 것 없어 늘 쪼들린다. 마침 아랫집 새댁이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아이를 임시로 봐줄 사람을 찾았는데 이틀간 아이를 봐 주고 지역통화 40‘누리’를 받았다. 1‘누리’는 시내버스요금 정도니까 돈으로 치면 4,800원에서 5만 원 정도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서 6~7,000원 받았는데 모처럼 뿌듯한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40‘누리’로 동네 재활용품 매장에서 오리털 중고 점파 하나를 5‘누리’에 사고 ‘35’누리로 회원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친한 할머니 몇 분을 불러 생일축하 겸 소주 파티를 열었다. 김 씨 할머니에게서 35‘누리’를 받은 정육점 사장은 대입을 앞둔 딸의 논술을 좀 가르쳐 달라고 옆집 휴학생에게 부탁해 과외비로 지불하고 그것을 받은 휴학생은 마침 중고 겔럭시탭이 필요해서 ‘성남누리’ 홈 페이지에 겔탭10 중고 구입광고를 냈다. 그런데 35‘누리’로는 겔탭 중고를 살 수 없어 60‘누리’가 모이기까지 다른 입시생 논술 과외를 하겠다는 광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몰려들어 논술학원을 차리게 되었다. 또 다른 젊은이 강 씨는 문화 활동에 관심이 많아 장구를 기막히게 잘 치지만 전문 공연 팀에 소속된 것이 아니어서 연주할 기회가 없었는데 지역화폐에 가입하여 칠순이나 개업식 풍물을 친다고 광고했더니 여기저기서 공연 초청이 와서 공연수고비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평소에 현금을 만져볼 기회가 없던 이들도 가진 재능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돈(원화)을 못 가진 사람들도 지역통화를 통한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시스템이어서 지역통화를 잘 운영하면 그 지역의 경제적 흐름이 활발해지고 돈을 못 가진 사람들도 경제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전체적인 생산과 소비유발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 공동체 경제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다수여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든 지역화폐를 통해 물품과 노동력, 재능, 서비스를 교환, 매매할 의지를 갖고 상호 신뢰가 형성 된다면 지역경제가 국가 전체의 경제와 별개로 활성화될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인정받고 매매, 교환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위한 실험이 성남에서 시작된 것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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