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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에서 삼학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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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에서 삼학사를 생각하다“

[독자기고]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열린포럼 ‘역사의 장’을 열고

황규식 | 기사입력 2005/11/03 [08:48]

“수어장대에서 삼학사를 생각하다“

[독자기고]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열린포럼 ‘역사의 장’을 열고

황규식 | 입력 : 2005/11/03 [08:48]
“하나 , 둘, 철커덕”

이게 무슨 소린가.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는 난데없는 구령소리가 울려 퍼졌다. 때는 바야흐로 10월 30일  정오를 넘어 오후 2시쯤,  가을 햇살이 수어장대 마당을 뉘엿뉘엿 비추고 있는 가운데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성남참여연대)가 주최하는 열린포럼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가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마련한 열린포럼 참석자들이 몸풀기 선무도 체험을 하고 있다.     © 성남투데이

먼저 마당을 연 것은 선관무 김연삼 원장이 지도하는 몸풀기였다. 김원장의 지도에 따라 등산객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다리를 들어올렸다가 힘을빼고 툭 떨어뜨리기도 하고, 어깨를 움찔움찔하거나 팔을 쭉뻗어 스트레칭을 하면서 일상의 피로를 던져버리고 있었다. 앞뒤로 손뼉을 치거나 한쪽다리로 서있기 등을 할 때는 넘어지면서도 즐거워했다.

▲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가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마련한 열린포럼에서 5인조 그룹 아메바가 공연을 하고 있다.     © 성남투데이

두 번째 무대는  5인조 그룹 아메바의 무대였다. 그들이 처음 공연장에와서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런 무대장치가 없고 전기도 공급이 안 되고 이동용 앰프는 용량이 작아 사용할 수도 없고 조명도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어떻게 공연을 한담...그러나 남한산성 자체가 무대라는 말은 들은 그들은 곧 기타와 탬버린을 치고 색스폰을 불면서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햇다. 그러자 곧 그것이 거창한 공연이 되어버렸다.  수어장대의 단청건물과 우람한 송림과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남한산성이 무대가 되었고 , 흐렸다 개었다하는 하늘이 조명시설이 되어 공연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자연자체가 무대였고 객석이었다.
등산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가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마련한 열린포럼에서 성남역사답사회 손병주 회장이 '삼학사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역사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성남투데이

선체조로 몸을 풀고 노래로 분위기를 한껏 돋운 뒤  그날의  본 강연이 시작되었다.
“수어장대에서 삼학사를 생각하다”
역사문화답사회 손병주 회장은 예의 검은색 개량한복을 입고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열변을 토했다.
“이 자리가  바로  370여 년 전 병자호란 시에 인조와 신하들이 청나라와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인가 아니면 항복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자립니다. ”

그는 자리를 이동하면서 300여년 전의 죽은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그 당시 고뇌하던 신하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럼 삼학사(三學士)는 누구인가?

“삼학사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청 태종의 12만 대군에 완전포위당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최후의 1인까지도 끝까지 싸울 것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들입니다. 한마디로 삼학사라 불린 홍익한, 윤집, 오달제 선생은 나라를 위해 지조를 지키다 간 봉선화같은 인물들이지요..”

그의 이야기가 삼학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가고 있을때 지나가던 등산객들은 자료집을 달라고 하면서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청나라로 끌려간 그들은 청나라 태종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군신의 의리를 강요하는 청의 무례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끝까지 무릎꿇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1637년 심양의 서문형장에서 참형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심 삼학사의 절개와 인품을 흠모하여 어떻게든 이들을 자신의 신하로 삼고자 했던 청태종은 ,그들의 기개에 탄복하여 그들이 죽은 뒤에 오히려 추모비를 세워 그분들의 충절을 기리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국대륙을 완전히 정복한 청나라도 조선의 선비정신을 정복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 춤새 송민숙 선생의 춤 공연.     ©성남투데이

강연이 끝난 뒤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졌다. 수어장대 입구쪽 마당에서 청치마에 갈색장삼을 걸친 조선의 여인이 하얀 버선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새 송민숙 선생이었다. 수어장대에 모인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 여인의 몸놀림을 보았다. 그이는 손에 죽비를 들고 자기 온몸을 타닥타닥 때리면서 한없이 슬픈 얼굴과 비장한 모습, 그리고 엄한 눈빛으로 시시각각 얼굴빛을 달리하며 남한산성의 하늘을 열고 소나무 사이로 바람을 불러들이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가 들고 두드리는 죽비소리는 마치 삼학사를 고문하던 소리같기도 했고,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기개와 지조를 잃어버린 후손들을 질책하는 소리같기도 했다.

......소리없는 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춤사위에서  370여년전에 한 아내를  사랑하듯이 조국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한 고뇌어린 선비를 만났고, 그들이 죽어가며 바라보았던 하늘과 바람소리를 들었다.

춤이 끝나고 다시 아메바그룹의 마무리 공연이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앵콜송으로 들어면서 사람들은 각자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필자의 귓전에는 삼학사 중의 한분인 홍익한 선생이 죽기 전 지었다는 시가 우렁우렁 들리는 듯 했다.

“구차이 살기를 바라지 않고 어서 죽어서
내 피를 북에다 발라서 둥둥 친다면
내 넋은 하늘을 날아 고국으로 갈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삼학사! 이 시대엔 그런 인물이 더욱 그립다.

아, 수어장대여!, 너 무망루(無忘樓)여!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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