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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발전의 밀알이 되도록 노력”

사람과 자연이 건강하게 사는 세상,나의 손끝에서 지역공동체로
<연재기획-협동조합운동③>지역속에 파고드는 주민생활협동조합

오인호 | 기사입력 2009/10/20 [23:14]

“지역사회 발전의 밀알이 되도록 노력”

사람과 자연이 건강하게 사는 세상,나의 손끝에서 지역공동체로
<연재기획-협동조합운동③>지역속에 파고드는 주민생활협동조합

오인호 | 입력 : 2009/10/20 [23:14]
성남에서 가장 오래된 생협은 <주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후 주민생협으로 약칭함)이다. 그 역사는  1989년 준비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주민생협은 1990년 10월 발기인대회로 그 첫발을 내딛는다.
 
사실 주민생협은 그 뿌리가 <주민교회>이다. 1979년 주민교회는 <주민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민교회와 주민신협이 힘을 합하여 주민생협을 만들게 된다. 생명문화창조, 공동체의 회복, 성평등, 먹거리를 통한 여성들의 사회참여, 등이 주민생협을 만들게된 계기가 된다.
 
▲ 주민생협 정자동 매장 전경     © 오인호

현재 주민생협의 조합원수는 9천500여 명이다. 성남에 신흥동 매장 그리고 정자동 매장 등 2개의 매장이 있다. 광주는 조합원 중심의 모임만 있고 수지, 죽전, 동백에 각각 1개의 매장이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각 매장의 1일 매출은 매장에 따라 다르지만 약 2백에서 5백만원 정도이고 총회, 이사회, 사무국 그리고 위원회등 기본적인 조직구조로 되어있다. 
 
의결기관으로 조합원으로 구성되는 총회가 있으며, 총회를 갈음 할 대의원 총회를 두고 있다. 대의원 총회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된 대의원으로 구성하며 정수는 100명으로 하고 임기는 3년이다. 지부는 성남지부, 분당지부, 수지지부가 있고, 이사회와 마을위원회, 생활재위원회, 환경위원회, 회보위원회, 교육위원회로 구성된 조합원위원회가 있다.

조합원 모임으로는 아토피자녀를 둔 조합원들의 모임인 ‘아토피 모임’과 풍물, 미술, 한자 등 교육프로그램인 ‘어린이문화마당’, 나들이 소모임인 ‘산 바람 아이’, 조합원들이 사진을 배우는 ‘사진교실’, 자연친화적 놀잇감을 만들며 함께 아이를 키우는 소모임인 ‘소꿉놀이’, 풍물모임인 ‘두드림’, 수지지역 어린이 나들이 모임인 ‘둥글게’, 수지지부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인 ‘벚꽃나무’가 있다. 대안교육모임으로는 ‘창조학교’, ‘덩더쿵어린이집’, ‘작은나무숲’, ‘너랑나랑산이랑’ 등이 있다. 

▲ 주민생협에서 조합원 대상으로 실시한 산야초 만드는 장면     © 오인호

주민생협의 일상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신규조합원 교육, 음식만들기, 환경쑤세미 만들기 그리고 각종 교양강좌와 일종의 벼룩시장인 아나바나장터 등이 비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저유소반대운동, 하수관 우수, 오수 분리운동 등 환경과 관련된 운동에 참여하였고 환경지킴이로 탄천조사사업도 해왔다. 남한산성지킴이로서 숲해설가, 대안유치원, 수지에 있는 대안초등학교인 <꿈나무학교>를 만들었다. 2003년 11월에는 학교급식 개선을 위한 조례제정 서명운동을 지역의 교육·여성단체들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민생협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조합원 하나하나가 주민생협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사업계획의 수립에서부터 총회준비 그리고 workshop 등 제반 모든 활동이 조합원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물론 그 과정은 때론 치열하고 격하게 보일지라도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역동성이 발동되어 활발하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다.  

▲ 주민 생협이 주관한 콩치즈 만드는 광경     © 오인호

다음은 주민생협 출범 때부터 함께하고 있는 최민경 상무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처음에 주민생협을 만들 때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
 
저희가 교회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선입견이 발전의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사나 공무원의 경우 당시 주민교회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들 때문에 가입 후 즉시 탈퇴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 그러한 어려움들을 어떤 방법으로 돌파해 나갔는가?
 
처음 30여 세대가 가입되었는데 교회 전도하듯이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나 콩나물 등을 나눠주고 유정란도 나눠 먹는 등 꾸준한 홍보와 노력으로 100여 세대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주문제 배달 방식을 탈피하여 3∼10세대 마다 당번제를 두어 주문서를 제작하게 하고 조별로 나누는 생활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결국 조직확대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주민생활협동조합 최민경 상무.     © 성남투데이

-. 주민생협을 하면서 보람된 일이라면 무엇이 있는까?

생산자의 판로를 보장함으로서 생협과 생산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조합원들이 생협의 일상적인 활동뿐만아니라 여러가지 환경, 지역문제, 교육 등에 적극 참여함으로서 자기를 개발하고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 주민생협이 역할 모델로 삼는 곳이나 사람 혹은 집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일본의 생협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의 경우 단순히 생협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미치고  지방자치에 다수의 시도의원을 배출하여 올바른 지역사회 만들기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 그동안 주민생협을 운영해 오면서 애로사항이나 제도적으로 아쉬운 점 혹은 미흡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99년 생협법이 제정되었는데 그 때 생협은 공산품을 팔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최근 두레생협 수도권연합회에 속해 있다가 독립하였기 때문에 생활제 구입에 있어 규모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두레생협 수도권연합회로부터 특별히 독립하게된 계기가 있었는가?

가치를 더욱 지역에 두고 생산자와 직접 대면하자는 취지가 있고요 지금은 어렵지만 규모의 합리화를 이루자는 차원의 고민에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사회적 기업도 육성하는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한알의 밀알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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