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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거리, 언제 발상 바뀌나

[문화/하다말다] 앙꼬 빠진 문화의 거리

벼리 | 기사입력 2005/06/17 [02:03]

문화의 거리, 언제 발상 바뀌나

[문화/하다말다] 앙꼬 빠진 문화의 거리

벼리 | 입력 : 2005/06/17 [02:03]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곧 공사에 들어갈 것 같다(관련기사 참조). 이번 심의를 통해 사업의 기본방향이 설정되었고 관계전문가들의 조언을 반영한 최종안이 나오는 대로 하루빨리 공사에 착수하겠다는 것이 시 집행부의 의지다. 이대엽 시장의 입장에서는 이 사업이라도 시장선거 전까지 반드시 완수해야 겨우 체면이 선다고 보는 것이다.

▲ 15일 성남시청 소회실에서 열린 문화의 거리 기본 및 실시설계 심의. 관계전문가들은 최종안 확정시 시민들이 여유있게 걷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연스러운 거리로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 성남투데이

주지하는 대로 30대 선거공약을 내세웠지만, 그것도 모자라 10대 비전을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별로 해놓은 것도 없고 시립병원 설립문제나 행정타운 조성사업의 경우를 보더라도 오히려 정신없이 두들겨 맞기까지 하질 않았나. 그런데 이 사업이 많은 우여곡절 끝에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는 주목해보자. 우선 우여곡절을 회고해보자.

실은 민선2기 시정부 사업의 연장인 남한산성 유원지를 수준 이하로 만들어놓고 ‘차없는 문화의 거리’라고 감히 시민을 상대로 ‘공갈’쳤던 일. 속칭 ‘돈 먹는 하마’로 낙인된 성남아트센터 공사와 막대한 운영비와 벌써부터 지역문화예술인 찬밥 취급으로 우려와 반발을 사고 있는 문화재단의 설립, 정책적 검토도 없이 어느 날 뜬금없이 패션시티 성남을 표방하다가 민의에 의해 좌절된 프레타포르테사업 추진 등 각종 대형프로젝트에 밀려 시장공약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담당부서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일. 예산 전액삭감과 구시가지 우선추진 요구 등 시의회의 거센 도전을 받았던 일 등등.

이런 우여곡절에 주목하는 까닭은 민선3기 시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적 검토와 주민의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이 사업을 갈팡질팡 추진해왔음을 밝히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이 사업에서 민선3기 시정부가 보여준 결론은 한 마디로 지역행정권력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권위와 능력이 아주 저급하다는 것이다.

하긴 담당부서에서 대형프로젝트들에 떠밀려 챙기지 못하다가 이 사업을 뒤늦게 틀어잡고 시작할 때부터 ‘섬세의 정신’이 녹아들고 ‘주민참여’ 속에서 추진되어야 할 사업이 '벤치마킹'이라는 허명 아래 남의 것 열심히 베끼고 흉내나 내고 탁상계획이나 짜는 수준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깨끗히 포기하는 게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시의회에도 할 말이 없지 않다.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은 장소성과 담아내야 할 문화콘텐츠에 중심을 두고 접근한다는 당초 의정활동 방침에서 상당히 후퇴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도 실은 다수 의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까운 것이다. 시의회 속기록을 점검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나마 문제의식이 있고 열심히 의정활동을 펼치는 지극히 일부 시의원들에나 해당되는 비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의회는 이 시장의 갈팡질팡하면서도 그저 무데뽀로 진행되는 사업 추진의지에 밀리게 되었고 고작 시 집행부로부터 이 사업을 분당에 하는 것은 신구시가지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시샘의 논리’를 인정받는데 만족해야 했고 나중에(언제?) 구시가지 수정, 중원 각각 한군데씩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라는 옵션을 확보했을 뿐이다.

이런 시의회도 그렇고 시 집행부도 그렇고 이 사업 추진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핵심은 아직도 원칙의 부재라는 점에 있다. 원칙이란 실제와 대립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제를 규제하기도 하지만 실제가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원칙 아닌가. 무슨 원칙인가?

현재 인사동거리, 대학로는 물론 지방자치 실시 이후 조성된 이런저런 문화의 거리들은 겉으로는 차별화된 듯 하지만 실은 같거나 닮아 있다. 오히려 장소의 구체성이 사라지고 무장소화되어 버렸다. 이런 장소를 '유사장소'라 하던가. 이는 그 정책의 출발에서 문화의 거리를 만드는 발상이 아주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른바 ‘장소 마케팅(place marketing)’이라 할 수 있는 장소 만들기, 장소 판매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편적인 발상은 이번에 곧 공사에 들어갈 분당구청 앞 문화의 거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관료사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데서 제대로 조언을 해줘야 할 연구기관들도 돈이 아쉬워서인지 생각이 그런 건지 이런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연구기관에서 시에 제출한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 타당성조사도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공간 또는 장소를 다루는데서 핵심은 일상생활의 체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내 경우,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지만 어릴 때 누비고 다니던 서울 청구동, 약수동의 그 좁은 골목길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요즘은 내 뒤를 이은 성남의 젊은애들이 노는 종합시장 주변 거리와 골목길도 역시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워낙 갈 만한 곳이 없는 성남구시가지인지라 이따금 올라 산책하는 남한산에도 다른 곳에선 느낄 수 없고 맛 볼 수 없는 나만의 숲길이 있다. 거리란, 길이란, 장소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장소나 소멸하는 지점이 있고 생성하는 지점들이 있다. 또 잘못된 것도 적지 않기에 의식과 행위에서 비판의 지점들도 있다. 소멸과 생성의 사이 또는 비판의 지점에서 구체적인 장소는 그 장소의 사용자들에게 강도를 달리하며 다채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떤 경우에는 정체성의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균열을 일으키는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열 받으며 비판적인 거리의 행위들도 만들어낸다(예컨대 그래피티와 같는 낙서나 그림, 공공벽화, 기동적인 거리의 공연이나 전시, 즉흥적인 퍼포먼스 따위).

거리를 가장 잘 실감하고 나름의 또는 집단적으로 정체성 있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거리를 자신의 장소로 만드는 것은 단편화된 개념적 도구와 이에 입각한 장소 마케팅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이 아니다. 바로 일상적 삶의 몸짓을 그곳에 의탁하는 장소의 사용자들이다. 대부분의 실패한 문화의 거리와 마찬가지로 거리의 조형물들이 비판받는 것도 장소의 사용자들을 무시한 체 미술장식품제도라는 빽을 믿고 겁없이 거리에 뛰어든 탓 아닌가.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꾸며질 분당구청 앞 거리가 휴지조각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고 술 취한 젊은 애들이 쓰러져 있기도 하는 지금의 종합시장 앞보다 더 좋다는 증거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일상적 삶의 체취가 배어 있지 않는 한, 그 체취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어떤 문화의 거리를 조성해도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크게 포착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거리를 끼고 저 잘난 듯버티고 앉은 그 딱딱한 분당구청이 비집고 들어와 흔들어대는 느낌도 별로인데다가, 역시 그 거리를 끼고 있는 드넓은 잔디광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불확실하다.

문화는 곧 삶이다. 그렇다면 삶으로서, 그 삶의 일부로서 거리를 다가가는 거리의 사용자들 바로 시민들에게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을 맡겨야 한다. 섣부른 장소 마케팅 이전에 사람 중심의 사업으로 방향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만 거리의 시설물이나 공공조형물도 사람이 요구하는 만큼 설치하는 것이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어차피 시작하게 된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기반조성의 방향에서는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이것조차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그 거리의 역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드웨어적인 시설부터 채우고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는 시민들이 알아서 하라는 발상은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것은 시민을 배제하고 대상화하는 관치행정이 아닌가.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 그 발상이 아주 못마땅하다. 하물며 그것이 이 시장의 궁색한 체면이나 세우는 일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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