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르는 곳마다 헛되이 지나치지 않으면 되겠다. 시끌법석 세상일을 피할 수 없는 신세에 찌는 더위까지 겹치면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끝에, 그 틈새에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없지 않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여서 반드시 휩쓸려 가지만은 않는다. 그 때 무엇이 밀려드는가, 너는? 그 때 나는 부용화(芙蓉花)가 눈에 비쳤다. 양평 가는 길에서. 제 철을 만난 부용화. 피고 진다. 마주한 꽃에서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멍-함' 그 자체. 꽃의 문채(紋彩)가 남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탓인가. 부용화는… 고요한 듯하고 담박한 듯하다. 텅 빈 듯도 하고 깊숙한 듯도 하다. 한여름 부용화가 피고 진다. 절로 자신을 드러내고 절로 사라진다. 다만 목적 없이 피고 질 뿐.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던지는 진지할 수밖에 없는 모든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진지한 물음조차 하찮은 인간의 이미지로 돌리는 저 꽃. 그래 그런가. 한 여름 시골길에서 마주친 저 무상함! 부용화의 저 찬란한 덧없음! 가지 끝에 부용화 산중에 붉게 피네 개울가 고요한 집 분분히 피고 지네. (왕유, 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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