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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화 피고 지네

분다리 기자 | 기사입력 2004/07/28 [00:37]

부용화 피고 지네

분다리 기자 | 입력 : 2004/07/28 [00:37]
▲ 한여름 부용화가 피고 진다. 절로 자신을 드러내고 절로 사라진다. 다만 목적 없이 피고 질 뿐이다.  ©우리뉴스

다만 이르는 곳마다 헛되이 지나치지 않으면 되겠다.
 
시끌법석 세상일을 피할 수 없는 신세에 찌는 더위까지 겹치면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끝에, 그 틈새에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없지 않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여서 반드시 휩쓸려 가지만은 않는다. 그 때 무엇이 밀려드는가, 너는?
 
그 때 나는 부용화(芙蓉花)가 눈에 비쳤다. 양평 가는 길에서. 제 철을 만난 부용화. 피고 진다. 마주한 꽃에서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멍-함' 그 자체. 꽃의 문채(紋彩)가 남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탓인가. 부용화는…
 
고요한 듯하고 담박한 듯하다. 텅 빈 듯도 하고 깊숙한 듯도 하다.
 
한여름 부용화가 피고 진다. 절로 자신을 드러내고 절로 사라진다. 다만 목적 없이 피고 질 뿐.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던지는 진지할 수밖에 없는 모든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진지한 물음조차 하찮은 인간의 이미지로 돌리는 저 꽃.
 
그래 그런가. 한 여름 시골길에서 마주친 저 무상함! 부용화의 저 찬란한 덧없음!
 
가지 끝에 부용화
산중에 붉게 피네
개울가 고요한 집
분분히 피고 지네.
(왕유, 부용화)
 
부용화는? 매화나 배롱나무처럼 오래 전 중국에서 건너온 아욱과의 나무다. 꽃은 무궁화를 닮았으나 훨씬 크다. 큰 꽃에 꽃잎이 얇아 바람에 흔들리면 청초한 멋을 풍긴다. 가지가 풀과 같은 성질이라 대개의 사람들은 풀로 알지만 엄연히 나무다. 꽃길에 줄지어 심어도 좋고 공원에 무리지어 심어도 좋다. 제 뜨락이 있는 사람은 한두 그루 정도 심어 완상할 만하다. 씨붙임이 좋아 가을에 거둔 씨앗들은 가까운 이웃이나 벗에게 나눠주는 여유도 갖게 한다. 성남에서 몇 군데 적당한 곳에 부용화 꽃길을 만날 수 있도록 시민들 또는 시당국이 작지만 섬세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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