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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2)

벼리 | 기사입력 2005/06/06 [14:20]

가벼움(2)

벼리 | 입력 : 2005/06/06 [14:20]
▲ 공단으로 가는 도로 옹벽에서     © 2005 벼리

뛰어난 화가가 여기에 이르러선 붓을 던지나니(好箇畵師到此休)
홍분(紅粉) 백분 칠하지 않아도 풍류라네(不塗紅粉白風流)
종이 위에 ‘서래의’ 분명하니(分明紙上西來意)
흰 눈 속 파초 웃으며 고개 끄덕이네(雪裡芭蕉笑點頭)
- 그림없는 부채(扁面不畵), 종휴(宗休)


은유(metaphor)는 시나 문학에서만 쓰는 문학적 장치는 아니다. 다양한 기호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사유의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토요일 성남문화연대의 초청으로 황송공원에서 공연을 가진 시노래모임 <나팔꽃>은 활동 취지를 알리는 플랜카드에서 ‘작게, 낮게, 느리게’를 내걸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이 문화그룹의 활동취지나 정체성을 은유한다. 이 은유로서 우리는 나팔꽃을 실감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가슴에 와 닿는 우리 시대의 담론을 알게 하는 은유들 가운데 ‘가벼움’이란 것이 있다. 이 가벼움이 은유가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벼움만 얘기해도 무거움은 따라오는 것, 자연 이 가벼움은 ‘무거움’을 제 짝으로 맞아 사람들 사유 속에 들어온다. 가벼움에 관한 담론이 촉발된 것은 이미 꽤 지난 일이나, 아마 사람들이 꽤 많이 읽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 가벼움을 못마땅한 사회현상으로 보고 의사풍요 속에서 사회문화적 진정성의 사라짐, 디지털 인터넷 문화의 확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 동양적인 것 찾기의 유행, 가벼운 것을 추구하는 홍보의 봇물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시대의 유행을 넘어 현대인간의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

내가 하찮게 사는 이상 그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다. 하긴 이런 구조적인 인간의 문제에 대적하려는 사회적 기운도 느껴지질 않는다. 인간을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던 거대담론의 병폐가 잔존하고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생명으로 하는 인문학적 정신도 궁지에 몰려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내 자리에서 저항하는 일밖에는 없다. 그것조차 종종 벅차다.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 내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이기주의는 살아남기도 힘들다고 느낀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씨앗은 보존되리라.

그 가벼움에 대한 작은 저항에서 핵심은 무거움이다. 이 경우 무거움과 가벼움은 화해불가능이다. 그러나 삶의 바탕은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런 화해불가능만을 다루지 않는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서로 소통하는 관계를 추구하는 일이 바로 그것일 터이다. 이 때 무거움과 가벼움은 전혀 다른 질을 확보한다. 내 경우 그것은 가벼워지기 위해 무거움을 밟아나가는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가벼워지는 것을 절감해보는 것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내가 아는 한,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타난 니체적 삶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니체적 삶은 너무 무겁다. 이 때문에 어느 지점에선가 철학과의 결별은 필수적이다. 그 결별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은 늘 다르게 다가오는 삶의 현장이다. 아내의 말 한마디, 내 어린것들의 변화, 종종 함께 일하는 예술가들, 지역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웃들, 아웃사이드적 삶들, 일상의 거리, 그리고 내 공부터인 물과 산과 구름이 흐르는 곳이다. 이런 소통에서 힘 있는 도구로 섬세함이 자리잡는다.

오랜 만에 거리를 걸었다. 대개는 삭막하다고 느끼는 그 거리에서도 의외의 경험을 할 때가 없지 않다. 그 거리는 실은 공단으로 향하는 도로였다. 그 도로는 쏟아져 내릴 듯한 산을 차단한 옹벽이 한쪽을 차지했고 그 옹벽은 뙤약볕과 비바람에 오래 동안 씻겨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옹벽을 바라보며 오래 만에 땀을 흘리며 걷다가 어느 ‘그림’(?)에 시선의 화살이 꽂혔다. 아마 근처 공장에서 누군가 페인트칠을 하고 붓을 닦을 요량으로 쓰윽 문지르고 털어냈을 터인데 그것이 어찌나 사람을 날아갈 듯 가볍게 하는지!

이런 기분에 누군가 ‘레디메이드(ready-made)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괜찮은 지적일 듯 싶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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