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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지방정부 수권능력 갖춰야”

민선지방자치 10년, 회고와 전망(3-1)

벼리 | 기사입력 2005/06/08 [16:10]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지방정부 수권능력 갖춰야”

민선지방자치 10년, 회고와 전망(3-1)

벼리 | 입력 : 2005/06/08 [16:10]
‘주민이 체감하는 민선지방자치 10년 평가 및 과제’

민선지방자치의 시대사적 의미, 지방=중앙!

사회적 관습보다 ‘개인의 자유의지’가 중요시되는 사회가 현대사회라는 점에서 전근대성으로부터 현대성으로의 탈출은 지방자치의 실시 여부가 척도가 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역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고 이는 지방의 의사결정이 중앙정부의 의사결정과 ‘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민선지방자치 실시의 역사적 의미일 것이다.

이런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부여한 경험은 1951년부터 1960년까지 잠시 있었으나 당시는 전후 복구기의 경제적 혼란, 정치적 무질서, 사회발전의 미성숙 등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시기였다. 그 후 1987년 6.29선언, 1991년 민선지방의회의 부활, 1995년 민선자치단체장제도의 부활 등으로 한국사회는 현대적 지방자치를 실시하게 되었다.

▲ 1일 경실련 주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선지방자치 10년 평가 심포지엄’의 제3세션. 임승빈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의 평가종합  발표와 정계, 관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성남투데이

그러나 지금 지방자치가 처한 상황은 지자체간 재정력 격차,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새로운 지역간 갈등, 교육자치의 미비, 각종 지방분권정책에 대한 각 직능단체들의 집단적 저항, 심지어 추진세력간에도 이견에 따른 갈등 등으로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난관은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의 집단적 저항을 유발하는 정책의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원칙론에서 수평적/개방적/신축적/투명한 자세로 새로운 과제를 선정하고 대처해 나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방안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참여정부는 기존의 단체자치적 특성에서 주민자치적 요소인 주민투표, 주민발의, 주민소환제를 도입하려고 하지만 주민이 체감하는 지방자치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지방분권은 세계적 추세다

현재 지방자치에서 나타나는 세계적 경향은 지방분권, 민과 관의 파트너쉽(partnership) 두 가지로 나타난다.

지방분권화정책은 유럽연합의 탄생으로 유럽이 가장 가속도를 내고 있다. 1985년 유럽지방자치헌장이 국제협정으로 채택되었고 같은 해 이를 기초로 한 세계지방자치선언이 유엔에 보내졌다. 그 요지는 1) 국가의 지자체에 대한 감독의 제한, 2) 지자체의 자치권에 대한 법적 구제조치, 3) 국정에 대한 지자체의 참여, 4) 지자체가 다른 나라의 지자체와 연대할 권리 등이다.

이런 분권화 추세는 1980년대 이후 급진전되어 인구 500만 이상의 75개국 중 12개국을 제외하곤 모두 지방이양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권화와 지방이양은 20세기 말의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개혁추세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95년 세계은행도 분권화를 세계적인 발전추세로 인정, 각 정부계층별로 기능상의 책임성을 명확히 정의해 부여하고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재정적 자율성을 보장하되 중앙정부의 규제/감독권과 지방정부의 자율성간의 균형을 유지할 것을 효과적인 분권화 추진방안으로 제시했다.

국가권한의 지방이양은 국정관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현지성’에 기초해 주민인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대응하도록 노력하는 의지가 국가 및 지방정부의 개혁이 추구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분권화는 사회 전체로는 정부주도에서 ‘민간을 포함한 사회 각 부문으로의 수평적 권한분산’을, 정부간 관계로는 중앙과 지방간 수직적 권한관계가 ‘수평적 권한관계’로 분산 곧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로의 권한이양(devolution)'을 의미한다.

파트너쉽형 사회로 가자!

민과 관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파트너쉽이란 개념이 도입된 것은 공공서비스의 제공이나 정책 결정의 권한이 정부, 행정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파트너쉽은 다른 주체간의 '대등협력 또는 상호의존관계'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트너쉽 이론은 분권화나 시민참여의 추진에 동기를 부여해주는 이론이다.

파트너쉽론의 핵심 논점은 ‘엠파워먼트(empowerment)’다. 말 그대로 파트너쉽론은 시민이 정책과정이나 주체적인 공익활동에 참여해 활동함으로서 시민이 ‘힘을 얻는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파트너쉽형 사회구조로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시민의식의 성숙'과 '행정기관의 개혁'이 핵심과제다. 이 핵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권’과 ‘(시민)참여’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정비가 필수이다.

지난 10년간 민선지방자치는 분권론과 민간파트너쉽론에 입각해 평가할 수 있고 또 향후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자치제도 개선에서 자치영위(自治營爲)로!

많은 전문가들이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의 근본원인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구도가 중앙집권적 체제로 구조화된 것에 기인한다고 동의한다.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중앙정부권력이 모여 있는 수도 서울에 사람과 정치/경제/사회/문화자원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권 과밀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와 지역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자체로 분산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자제가 실시,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자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중앙집중과 인적/물적 수도권 집중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가 외형적으로 실시되고 있을 뿐 내실 있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고 지자제가 지역발전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간 기회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기하기 위해선 우선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주민이 선출하는데 그치는 외형적 지자제에서 벗어나 실질적/적극적인 지자제가 이루어지도록 분권화되어야 한다.

즉 중앙정부가 가진 권한과 기능의 상당부분을 지자체로 이양해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지역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계획권, 결정권을 확보해 지역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하주종관계에서 대등협력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권, 결정권이 강화된 풀뿌리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지자체의 행정력, 조직관리력, 재정력 강화를 통해 중앙정부에 불필요한 의존없이 자율적이고 자립적으로 정책을 선택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역량과 체제가 요구된다.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과 비교해도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 발전에 대한 추진의지가 강하다. 참여정부는 5조원 규모의 특별회계 신설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라는 3개 개혁특별법을 2003년 말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방침이 국가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그 내용은 첫째 국가균형발전은 장기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이므로 추진 초기부터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발전할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균형발전의 기본전제를 형성함에 있어 다양한 불균형 수준과 내용을 외면한 채 오직 수도권-비수도권이라는 특정지역 범위만을 기초로 해 오히려 국가균형발전이 추구하는 국민통합보다 분열과 역차별에 따른 지역갈등을 야기시킬 위험이 있다.

회의론자들도 기본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지역의 발전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어느 지역의 주민이든 기본적인 삶의 질을 누리게 하자는 국가의 임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문제제기의 지점은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선택과 우선순위'가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충분한가에 있다.

실제로 지방분권과 지역분산에 관한 논쟁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특히 지역분산의 경우는 큰 틀에서의 당위성만 강조되었을 뿐 그 안에 내포된 균열들이 제대로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

지방분권과 지역분산에 관한 참여정부의 논리와 주장이 당위적 차원을 넘어 현실적 설득력을 얻으려면 분권과 분산에 관한 시각 차이와 논란이 보다 분명히 규명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지방자치정책은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했을 뿐 '주민의 삶과 관련된 정책'은 매우 미흡했다. 그 근거는 첫째 수도권 집중의 국토구조를 방치한 채 지난 10년 동안 지역격차는 더욱 더 벌어졌고 지방의 공동화는 가속되었다. 둘째 경제적 취약계층이 도시로 몰려드는 과거의 이농현상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적 취약계층 및 노년층이 지방에 잔류하고 경제적으로 강한 계층이 도시화되는 ‘신(新)빈익빈부익부’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 발전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지방분산의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곧 지방분권은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경제력 분산’ 및 ‘지역혁신’과 결합되어 추진되어야 바람직하다.

경제력 분산의 전제는 지방에서도 경제활동의 핵심적 구상기능과 사회운영의 충추관리기능이 수행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기능을 수행할 인재가 양성되고 결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에서 지방분권화와 더불어 공공기관, 민간기업의 지방분산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앤서니 기든스가 언급한 대로 지방분권의 목적은 ‘민주주의의 민주화’와 ‘국가경쟁력의 강화’라는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전제는 ‘지방의 창의성’이다. 지방분권은 따라서 지방의 창의성을 살릴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지역사회가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개인의 창의성이 지방정부에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그 동안의 지방분권정책을 비판해볼 수 있다.

첫째 분권/자치는 ‘수단적 가치’이다. 그것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성숙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즉 분권/자치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것’이다. 시민이 수혜자가 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자신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를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이 의사를 반영하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의 확충과 분산된 권한과 자원을 올바르게 운영할 ‘시민의 민주적 역량 갖추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일상적인 지방정부에의 주민참여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지방권력에 대한 주민통제, 주민소환/주민투표/주민소송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매우 미흡되거나 무시되고 있다. 특히 분권/자치에 대한 논의가 여성, 문화,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반영되지 못한 채 행정의 경제의 분산과 개발에 치우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참여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가 빠진 지방분권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로드맵은 ‘시민사회 활성화가 하위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주민참정제도의 도입과 시민사회 활성화 기반강화를 위한 조청들은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은 채 검토사항으로 밀려나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가 빠진 지방분권은 100% 허상이다. 이로 인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중앙과 지방의 기득권 세력간의 ‘권력분점’으로 전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방분권 정책은 행정, 경제영역에서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 특히 지역정치에서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치와 다르게 지역사회의 공론이 모이고 자원을 배분할 건강한 지역정치가 필요하다. 현재 지역정치의 현실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주민의 공론장이 아니라 중당당의 당론에 좌지우지되고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오히려 중앙정치의 상황이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로드맵에는 ‘지방선거제도 개선’만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을 뿐 ‘지역정치의 혁신과 활성화를 위한 논의’는 배제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의 지방자치에 대한 논의는 중앙정부, 단체장, 지방의회, 지역의 토호세력간의 세력다툼과 일부 지식인, 일부 시민단체가 가세한 일종의 ‘지역등권주의’의 양상을 보인다. 지역주민들의 자신의 권리와 의무가 크게 바뀔 수 있는 드문 상황임에도 정작 주민들은 정보의 단절과 참여의 제한으로 이런 논의과정에 소외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간의 민선지방자치는 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나 주민들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하는 '주민중심의 지방자치 곧 주민자치'의 정착은 부재했다고 평가된다. 이 점에서 지난 10년간의 지방자치는 지방의 기득권세력을 중심으로 한 ‘나눠먹기식 지방자치’였을 뿐이다.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중심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1인 주민감사 청구제 및 주민소환제의 도입, 예산과정에서의 시민단체 참여, 지방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공개, 주민자치센터의 주민에 의한 자율적 운용 등이 법률 또는 조례로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정리와 과감한 지방이양을

지역사회에는 중앙부처의 지역사무소인 특별지방행정기관이 있다. 환경부의 지방환경청, 노동부의 고용안정센터, 보건복지부의 각종 사회복지관, 여성부의 여성회관, 행자부의 하부기관은 아니나 업무상 연계가 높은 읍/면/동사무소 등.

이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종적으로 연계성이 강하나 횡적으로 거의 연계성이 없다. 그 결과 유사정책의 중복집행, 행정낭비 초래, 기관간 비협조로 인한 정책능력 저하현상이 두드러진다. 횡적교류의 부재로 인한 이 같은 문제들은 각 부처의 조직편성의 원리가 다르고 재정적 지원관계도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의 정책과정에 전문가, 지역주민이 참여한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서 논의되는 논제나 그 상태를 몰라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에서 통합적인 접근에 한계를 드러낸다.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정책의 문제는 지방행정의 특성상 통합적/종합적 성격을 갖는다. 이 점에서 중앙부처와 연계된 종적/전문영역별로 분화된 행정서비스는 지역사회의 근본적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민선지방자치에서 이런 종적인 행정서비스제공현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역사회에서 주요한 행정서비스가 중앙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져 통합적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지방교육청은 기형적 형태의 중앙부처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이다. 우리나라 교육자치의 현재 모습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단지 그들만의 외침일 뿐이다.

따라서 첫째 특별지방행정관서의 정리가 필요하며 둘째 과감한 지방이양을 해야 한다. 셋째 동시에 중앙-시/도-시/군/구지차제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자치기능 강화를 통한 행정구역개편을

지자체의 구역이란 지자체의 통치권 또는 자치권이 미치는 지역적 범위를 뜻한다. 행정구역개편의 필요성은 도시화, 정보화의 진전에 따른 점도 있으나 지자체의 자치기능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즉 지자체의 구역은 국가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지방에 정한 행정구역과는 다르다. 지방자치는 지역사회 주민과 가까운데서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공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므로 자연히 ‘소규모적/기초적인 지자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의 행정구역상의 계층적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대규모적이고 광역적인 공공업무의 처리를 위해서는 기초지자체 외에 광역지자체의 설립을 필요로 하며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사이의 유기적인 협조를 위해 광역지자체에 기초지자체에 대한 지도/원조/조정 등 기능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민선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하나가 시/도-시/군/구자치기능의 중복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경유행정, 중복행정, 지도감독행정 등 행정의 불균형적 요소가 많고 불필요한 비용지불로 지방 및 국가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 이 점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한 행정구역개편론은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제기하는 행정구역개편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전국의 50-60개의 정도의 광역으로 나누며 도시부는 1층제로, 농촌부는 2층제로 하자는 안은 행정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 같으나 그것은 현재의 상태에서일 뿐이다. 수도권만 해도 인구이동이 심하고 신도시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지방의 경우는 도청소재지 중심으로 인구의 편중화가 극심하다. 정치권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다. 행정구역개편의 척도를 인구기준과 재정력규모로 삼는 것은 끊임없는 행정구역개편안만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큰 것은 효율적이고 작은 것은 민주적이라는 정치권의 관점은 행정의 효율성과 효과성 자체가 지닌 '기준의 모호함'을 간과한다. 지방자치의 효율성/효과성은 행정서비스의 신속성보다는 ‘민주성’, 획일성보다는 ‘지역의 정체성’ 확보를 통해 지역간 경쟁을 불러일으켜 다원적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큰 지방정부는 주민참여의 시공간적 한계, 비민주적 정책결정, 주민과 함께 하지 않는 정책집행으로 정책실패, 고비용지불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정치적 의도가 지나치게 강하다. 기초지자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배제, 개인후원회제도의 허용, 정치개혁협의회의 선거구 조정 및 비례대표제의 확대 등 정치제도 개혁을 위한 움직임에 반발해 잠재적인 정적의 수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 행정구역개편 논의가 이루어져선 안된다. 정치적 의도가 깔린 행정구역개편 논의는 현실적으로 난관에 부딪칠 것이고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이다. 행정구역개편의 본질적 내용은 '자치구역개편'의 문제에 있다. 주민투표를 통한 주민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중앙정부는 정책적/재정적으로 지원하면 된다.

넷째 행정구역개편보다 시급한 것이 현행 일률적이고 '광역중심적인 지자체 사무권한을 개선'하는 것이다. 인구 1천여만 명이 넘는 경기도가 다른 도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77개 시, 88개 군, 69개의 자치구가 모두 동일한 행정환경이 아닌데도 유사한 자치권한을 가진 것도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시급한 것은 행정구역개편이 아니다. 지역의 특성과 재정상태를 반영하는 적정한 사무배분 기준을 만들고 광역지자체의 기능을 축소시켜야 한다. 정치권은 지방분권의 목적이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다는 것, 그 대전제가 ‘지방의 창의성’을 살리는데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방정부 수권능력 갖춰야

지방자치에 대한 두 가지 편향부터 비판하자. 첫째 지방자치를 국가로부터 연방제적 독립성으로 보는 것이다. 지자체는 민주적 가치를 갖지만 이를 강조해 지방자치를 정치적 과정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장식물로 떨어지고 만다. 지방자치, 왜 하는가?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역단위까지 분산시켜 지역공동체 단위에서 주민들의 참여와 자치를 통해 주권재민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 있다

둘째 지방자치를 지방의 자율성을 배제하고 국가로부터 수여되는 것이며 자치권도 국가로부터 창출되는 것으로 보는 지방행정적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지방정부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만 처리하는, 자율성 없는 국가행정기관의 일선기관으로 보게 만든다. 지방정부의 기능은 결코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사무에 한정해서 볼 수 없다. 지방자치, 왜 하는가? 지역 공동의 일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을 우선 수행하는 데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함께 국민복지와 국가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상호간의 기능분담이여 협조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실효성을 갖기 위한 핵심은 지방정부가 '수권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한을 가진 자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지역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의 현실상의 문제는 첫째 몇 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전국의 지자체 대부분이 단체장과 지방의회, 지역의 유력인사들 마저도 정치성향이 같거나 동일정당의 당원이 지자체 정책결정과정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가 권세가들의 나눠먹기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건강한 견제비판세력이 필요하다.

둘째 수권의 기반인 지역사회가 여전히 과거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지방정치에의 적극적 참여 곧 지방선거와 지방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지역정치를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하고 비판/견제할 수 있는 지역사회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지역의 자발적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지역주민이 자치의식을 획득하는 통로로 기능해야 한다. 그들의 임무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전횡을 막는 것, 나아가 일부 지역주민들의 비민주적 지역이기주의를 순화시키는 순기능을 발휘하는 데 있다.

지방정부는 건강한 견제비판세력을 육성하고 로컬 거버넌스(local governance)의 한 축으로서 주민과 지역의 시민단체들과의 파트너쉽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핵심과제로 삼아야 한다.(발제/임승빈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명지대 행정학과)

※ 다음 연재기사는 주제발제에 대한 종합토론이 이어집니다.
 
  • 현행 ‘지방자치제도’ 개선모임 발족한다
  • 품격 있는 지방정치를 기대하며…
  • 풀뿌리 썩는 줄 모르고…
  • “참여정부, 지방자치 겉돈다”
    “시민단체 비롯, 주민자치운동 절실”
  •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지방정부 수권능력 갖춰야”
  • “여성정책, 위기와 기회의 기로”
    “교류지역 다양화, 단체장 관심 필요”
  • “민원행정 질적수준 제고해야”
    “지속가능위원회 법제화 필요”
  •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해야"
    "중앙이 지방에 줄 여유 없어"
  • 민선자치 큰 병폐는 ‘선심행정, 난개발’
    민선단체장 ‘민주적 리더쉽’ 요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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