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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에 ‘감시의 눈’이라니?
‘감시의 눈’이 사라지는 그날까지!(①)

[문화/하다말다]무슨 근거로 시민의 정보인권을 짓밟니?

벼리 | 기사입력 2006/07/18 [23:13]

시청사에 ‘감시의 눈’이라니?
‘감시의 눈’이 사라지는 그날까지!(①)

[문화/하다말다]무슨 근거로 시민의 정보인권을 짓밟니?

벼리 | 입력 : 2006/07/18 [23:13]
시청사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잊지 마시라!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시민’이다)은 ‘주시’의 대상이며 ‘감시’의 대상이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청사 곳곳에 촘촘히 설치된 사실상의 몰래카메라이자 감시카메라인 CCTV에 ‘포획’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시청사를 나갈 때까지 무려 25대의 CCTV, 그 포획의 눈를 통해 관은 당신을 주시하고 감시한다.

▲ 성남시가 청사방어 차원에서 1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시청사 내에 CCTV와 전동철제 셔터를 설치해 시청을 출입하는 민원인들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시청사 요소요소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카메라.    ©조덕원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은 영문도 모르는 당신을 소환할지 모른다. 관이 CCTV를 통해 포획되는 당신의 전부를 어떻게 써먹었는지 당신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관이 시청사에 들어선 당신을 통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당신을 주시하고 감시한다는 점이다. 더러운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가. (쨔샤, 난 네가 어제 한 일을 알고 있어!) 이 엿 같은 기분!

당신이 시민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훌륭한 공무원을 직접 찾아 고마움을 전하고 칭찬하기 위해 시청사를 방문했다고 치자. 아니 시민을 위해 헌신한 이대엽 시장의 덕치를 칭송하고 더 헌신하라고 격려하기 위해 시장실을 방문한다고 치자. 시청사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1층 로비에 있는 안내데스크의 공무원으로부터 친절한 안내를 받을 게 틀림없다. 속지마라. 그것은 관의 ‘위선’이다!

안내 공무원의 눈은 관심를 나타내고 배려하는 ‘하나의(눈은 둘이지만 기능적으로는 하나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눈’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인간적인 눈을 둘러싸고 시시각각 돌아가는 것은 실은 통제를 위한 25대의 CCTV라는 주시하고 감시하는 ‘무수한 기계의 눈’이다. 친절한 안내는 명백한 위선이다! 면전에선 당신을 향해 웃으면서 말한다. ‘왕으로서 받들겠습니다, 시민이 왕이니까요.’ 그러나 속내는 ‘시민이 왕? 웃기고 자빠졌네! 쨔샤, 관이 왕이야, 왕!’

게다가 이 추악한 위선을 관이 스스로, 정곡으로 폭로하는 중대한 사실이 있다. 시청사 곳곳에 설치된 25대의 CCTV를 작동시키고 통제 목적으로 화상정보를 기록하고 시장실을 비롯한 시청사 방호업무를 맡은 행정기획국 총무과로 전달하는 중앙통제실이 바로 당신이 친절한 안내를 받는 그곳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실제론 CCTV를 통해 당신을 주시하고 감시하는 중앙통제실에서 당신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 아이러니에서 두 가지 의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앙통제실은 주시와 감시를 위한 ‘악의 소굴’이라는 장소적 의미 하나. 따라서 악의 소굴에서 위선을 부리는,‘위선적인 너무나 위선적인 관’이라는 해석학적인 다른 의미 하나. 위선 떨지 말라!

관은 왜 이 같은 통제장치를 시청사에 도입했는가? 다시 말해서 이 같은 통제장치 도입의 전제가 되는 관의 의식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밝히자. 시민을 시민으로 보지 않고 ‘범법자’로 본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단지 이대엽 시장을 결사옹위하자는 유치한 목적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이 주인이라고 설파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지방자치를 민·관 협치를 통해 가꿔나가자고 설파되는 이즘 관이 먼저 고개를 숙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관이 시민을 범법자로 보다니? 눈이 고것밖에 안돼? 미쳐버린다! 돌아버린다! 관이 시민을 범법자로 보는 한, 시청사를 방문하는 모든 시민은 잠재적인 범법자다! 바로 오늘 시청사를 방문한 당신이다! 당신은 시청사에선 범법자가 되거나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밝힌 대로 기분 엿 같다! 그런데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무엇?

모든 금기는 그것이 금기를 속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금기’, 다른 하나는 ‘위반’이다. 금기는 위반하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반시 처벌이 뒤따른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위반은 금기를 깨라는 것, 곧 위반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후자는 역설이 아니다. 더군다나 말장난은 결코 아니다. 이미 밝혔듯이 관이 시민을 범법자로 보지 않고는 관이 25대의 CCTV와 중앙통제실을 설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든 위반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든 시민을 시민으로 보지 않고 범법자로 보는 관의 의식이 문제로 떠오른다. 왜 문제가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전세계인이 애독해온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1984년》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불후의 명작임은 이 시대의 상식에 속한다.

조지 오웰은 소설을 통해 오늘날 CCTV와 같은 보이지 않는 통제장치를 악용하는 빅브라더라는 권력자에 의해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그렸다. 지금 시청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떠한가? 조지 오웰이 그린 그 암울한 미래사회의 전망이 현실화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 의미는 민에 ‘보이지 않은 채로’(CCTV는 다만 누군가 있다는 암시를 통해 누군가 자신을 본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곧 관이 시민을 범법자로 보는 의식의 문제는 단순한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부당한 권력, 그 부당한 권력의 행사라는 ‘실제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통해 다른 한 가지 답도 추가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 밀회를 나누는 일이 오직 통제장치가 없는 곳 바로 포탄이 끊없이 발사되고 떨어지는 폐허에서나 가능하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줄거리는 요컨대 권력이 통제장치로서 CCTV와 같은 과학기술의 산물을 악용하며 그 악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간적인 삶의 회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계하고 싸우는지를 시사한다. 지금 시청사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같은 과학기술 산물의 악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쨔샤, 난 네가 어제 한 일을 알고 있어!) 어디 시청 무서워서 갈 수 있겠는가!(공무원들이 시민의 머슴, 시민의 봉사자라는 믿음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공공기관은, 특히 시정부와 같은 공공기관은 견제되지 않는 한 부당한 방향으로 얼마든지 권력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요즘처럼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그 산물들을 부당한 권력화를 위한 도구로서 악용할 우려는 매우 높다. 지금 시청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 같은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은 채로 무수한 기계적인 눈을 통해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시선이 어느 새 우리 곁에 와 있다!

권력이 사람들을 때리고 윽박지르고 가두는 방식으로 길들이는 것이 이른바 훈육사회다.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벤담의 판옵티콘 모델 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권력이 CCTV와 같은 과학기술의 산물인 ‘제3의 눈’을 작동시켜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길들이는 것이 이른바 통제사회다.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 성남시가 앞장서고 있다! 지방자치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나서서 설령 시민들과 의견과 입장이 맞지 않아 부딪치는 한이 있더라도 인내를 갖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인간적인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대신 CCTV를 통해 시민들 감시하고 화상정보로서 기록된 감시의 결과를 모종의 법적 조치의 근거로 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룩한 시민의 이름을 가진 당신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단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당신이 시청사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은 속속들이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통제 목적의 감시행위는 설령 당신이 시청사에 들어와 관에 해가 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자체로 당신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다. 당신의 전부는 당신에 속한다. 당신의 몸에 속한다. 누구도 당신의 몸에 속하는 어떤 것도, 하다못해 당신 몸의 이미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시정부는 당신의 ‘정보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정보화사회에서 정보인권은 침해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다. 사적 영역도 아닌 공적 영역에서, 그것도 정보인권 보호에 적극 앞장서야 할 시정부가 당신의 정보인권을 짓밟고 있다. 도대체 관이 뭔데? 무슨 자격으로? 무슨 근거로?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

시청사에 불법적으로 설치된 감시카메라 및 중앙통제실 문제는 법적으로도 충분히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중대사안'으로 판단한다. 관계공무원들에 대한 책임의 소재도 가려 반드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감히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를 감시하다니! 감히 우리를 통제하려고 들다니! 니들이 뭔데!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시의회도 나서야 한다. 끝까지 달려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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