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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 겸손을!
‘감시의 눈’이 사라지는 그날까지!(④)

[문화/하다말다] 신의 눈, 인간의 눈

벼리 | 기사입력 2006/07/24 [23:27]

신 앞에 겸손을!
‘감시의 눈’이 사라지는 그날까지!(④)

[문화/하다말다] 신의 눈, 인간의 눈

벼리 | 입력 : 2006/07/24 [23:27]
기독교인의 입장에 볼 때, 신의 눈과 인간의 눈이 같을 수 없다. 세상(인간의 세상) 자체를 창조한 신과 신이 창조한 세상 안에서만 창조할 수 있는 인간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세상을 창조한 만큼 세상을 ‘창조 이전’으로 돌릴 수도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그것은 다름아닌 ‘세상의 파괴’, ‘세상의 종말’이다. 세상의 창조, 세상의 종말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도전하지 말라!

▲  성남시가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니터를 통해 민원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조덕원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지도 못했고 따라서 파괴할 수도 없다. 그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도 세상을 파괴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핵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핵무기가 무엇을 뜻하는가? 개인이나 사회의 종말을 가져오는 정도? 문명의 종말을 가져오는 정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라는 종 자체의 종말’을 야기할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핵무기는 어떻게 등장했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속도에 속도를 더해온 과학기술 덕분이다.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 종의 종말이 다름 아닌 가속도의 법칙을 제1의 원칙으로 삼은 과학기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폴 비릴리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과학기술 앞에서 잠들기보다는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나는 과학기술 앞에서 절대 잠이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은 첨단을 달리고 있는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의 종말,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명백한 신의 ‘모방’이다. 어쩌면 인간이 신의 모양을 닮은 데서 비롯된 일인지도 모른다. 신의 실수? 이 모방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한 신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 혼을 신의 정신, 혼으로 착각한 결과다. 인간의 어긋난 욕망 그 자체다. 이 때문에 세상 안에서의 창조를 세상 자체의 창조로 따라서 세상 자체의 파괴로 오인하게 되었다.

세상 안에서의 창조는 사실은 창조가 아니다. 항상 기존의 것을 재구성하고 변화를 줄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세상 안에서의 창조인 인간의 창조는 신의 창조와 같은, 말 그대의 창조,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 원초적인 창조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창조가 실은 신의 창조와 같지 않다는 이런 의미는 인간이 기존의 것에 대해서 심지어 인간에 의해 창조된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해서도 완전한 지식이나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에서 과학기술이 권력을 가진 특정한 소수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옳게, 좋게 쓰여 질 수 있다고 보는 계급주의적, 민중주의적 시각은 그 다음의 문제이며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인간의 창조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 인간에 의해 장악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피조물이 인간에게 무관심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준다.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 피조물의 반란, 바로 이것이다!

정의를 위한 전쟁? 엿 같은 소리 하지마라. 모든 전쟁은 ‘무기의 논리’를 따른다. 역사상 전쟁에 동원된 무기들, 특히 공격무기들을 생각해보라. 어떻게 변해왔는가? 오로지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창, 화살, 대포, 기관총, 미사일, 핵무기! 마침내 인간은 인간의 일부를 죽이는 무기에서 인간 종 자체를 말살하는 무기를 갖게 되었다! 전쟁은 ‘순수전쟁’ 그 자체가 되었다! 전쟁을 위한 전쟁, 전쟁이 전부인 전쟁, 파괴 자체가 유일한 목적인 전쟁!

어쩌면 인간은 세상의 종말, 인간 종 자체의 종말 이후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굴까? 인간이라는 종을 말살하고 지구를 파괴하고 지구탈출을 감행할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그는! 인간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이 세상 안에서 쌓아온 모든 위대한 사상, 가치, 문화, 피조물 모두를 부정할 그는! 어쩌면 그는 특정인이 아니라, 특정권력집단이 아니라 다수의 인간, 어쩌면 인간 모두일지도 모른다. 가속도의 원칙을 따르는 과학기술은 불가피하게 그런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CNN이 전하는 코소보전쟁, 걸프전에서 보았듯이 현대의 최첨단 공격무기들이 하나같이 ‘정보통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정보통신은 무기의 논리에 ‘절대속도’라는 최강의 엔진을 부착시켰다. 아니 절대속도는 무기의 논리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일 것이다(이 점에서 모든 무기가 가장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뾰족한 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더 이상 시속이 아니라 마하로, 마하에서 광속으로! 절대속도 앞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시간’이 없다!

어떤 미친놈이 정의의 전쟁을 운운하는가?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헛소리다. 정보통신이 자랑하는 그 절대속도 앞에서는 인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는 전부, 인간 사이에 오가는 전부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과거, 현재, 미래? 엿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과학기술이 현대에서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 특히 군사분야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군사분야에서 가장 잘 적용되고 있는 정보통신이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똑바로 봐야 한다.

결코 신의 눈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 신의 눈을 가지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다. CCTV를 통해 인간을 감시하려는 시도가 정확히 그것이다. 신의 눈을 가지려는 그 시도는 끝내 CCTV 자체가 인간을 감시하는 반란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정보통신과 결합된 감시의 논리는 인간의 전부, 인간 사이의 전부를 무력화시킨 절대속도, 그 자체가 된 무기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자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감히 시청사 곳곳에 아니 거리 곳곳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여대는가!

인간이 인간을 감시할 수는 있다. 그 근거는 오직 하나, 인간이 인간을 부정할 때에 한정된다. 살인, 강도, 상해, 강간 등의 방식으로 인간을 해치려고 달려드는 인간을 격리하고 그를 감시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옥을 만들고 특히 살인에 대해서 인류가 지금까지 가장 엄한 처벌을 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유일한 근거 외에는 어떤 인간도, 그가 권력을 가진 인간일지라도, 공익을 내세우는 관료일지라도 인간을 감시할 근거는 전혀 없다!

인간이 인간을 감시할 때, 인간이 문화적 존재라는 점에서 문화의 일부인 과학기술을 이용할 수는 있다. 예컨대 CCTV를 ‘우범지역’에 설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조차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 충분히 합의해야 한다. 통제되지 않거나 통제에서 자유로운 특정한 인간이나 특정한 집단이 제 멋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특정하지 않은 인간들, 특정하지 않은 집단들 사이에서 충분히 따져봐야 하고 충분히 합의해야 한다. 그렇게 해보란 말이다! 과연 CCTV가 설치될 수 있는 지역이 우범지역인지, 우범지역을 관리하는데서 과연 CCTV 설치가 유일한 대안인지!

그래, 시청사가 어떤 공간인가? 우범지역인가? 범죄자들이 득시글한 곳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시청을 찾아와 요구를 제기하는 주민들이 과연 우범지역에라도 와 있다는 얘기인가? 설령 주민들이 항의하는 일이 있더라도, 거칠게 나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런 일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일어나지 않도록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가는 노력을 과연 제대로 해보았는가? 아니면 시청사가 쓰레기불법투기지역인가? 과연 불법적으로 투기된 쓰레기들이 득시글한 곳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관과 주민이 합심할 수 있고, 합심해서 스스로의 자치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지방자치가 아닌가? 뭐하러 시장을 뽑고 뭐하러 시의원을 뽑으며 뭐하러 그들을 먹여살리는가? 왜 지방자치에 역행하는가! 시민을 범법자로 간주하는 CCTV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 멈추지 않으면, 지금 우리 모두 성찰의 기회를 갖지 않으면 영원히 잘못 걷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는 자가 유별나서가 결코 아니다. 합리적인,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으로 충만하다. 참, 

‘이대엽 시장은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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