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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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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벼리의 돋보기〕정치인과 말

벼리 | 기사입력 2008/11/21 [14:35]

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벼리의 돋보기〕정치인과 말

벼리 | 입력 : 2008/11/21 [14:35]
“공무원은 공과 사를 명백히 분별하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며, 친절하고 신속·정확하게 모든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성남시가 성남시의회에 제출한 ‘성남시 지방공무원 복무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이다. 첫 번째 인용조항은 “공무원은 공과 사를 명백히 분별하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며, 친절·공정하고 신속·정확하게 모든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는 기존 조항을 고쳐달라는 것, 두 번째 조항은 신설해달라는 것이다. 후자는 사회통합 저해요소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부 공직자의 종교편향 행위에 대한 정부의 반성을 담고 있다. 이는 공무원 복무조례에 공무원의 종교적 중립의무 조항이 들어오게 된 사회적 문맥을 심사의 한계로 삼을 것을 시의원들에게 요구한다.

▲ 조례안을 심의하고 있는 성남시의회 행정기획위원회.     © 성남투데이

성남시가 제출한 개정내용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그럼 시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 맞습니다하고 개정해주면 된다. 맞는 것은 맞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맞지 않다고 비틀어대는 것은 불순하게도 딴 생각이 있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시의원이 나서서 비들어댈 경우 개정을 요구한 공무원 입장에서는 제출한 개정안이 왜 맞는지 그 근거를 제시만 해도 그 자체가 정당하면서 강력한 반론이 된다. 시의원과 공무원과 관계란 이런 관계만이 지켜야할 유일한 원칙이자 태도다.

그러나 양쪽 다 그렇지 못했다. 시의원들은 온갖 구실을 붙여가며 비틀어댔다, 공무원들은 비겁하게도 침묵했다. 이것이 21일 성남시의회 행정기획위원회에서 본 것이다. 시의원 중 누가 앞장섰나? 최윤길 의원(한나라당)이다. 왜 이런 개정안을 올리냐,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 차별만 있냐, 정치 차별도 있고 지역 차별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킨다고 왜 앵무새 같은 짓을 하느냐, 지방자치시대 아니냐는 것이다. 공무원 교육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영락없는 ‘정당화’라는 수법이다. 콩과 보리를 가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수법이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면 문제의 맥락을 이탈해 온갖 구실을 끌어들이는, 그런 천박한 수법이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독불장군님’이라 해도 괜찮다. 여기에 남상욱, 남용삼 의원(한나라당), 박문석 의원(민주당)의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문제의 문맥을 이탈하는 방식으로 정종삼 의원(민주당)이 지역에서도 종교적 차별과 반발이 일부 있다며 말려들었다. 이런 태도는 어떤 것일까? 너도 하는 데! ‘나도’주의(me-tooism),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당화의 놀음은 공무원의 종교적 중립의무 조항이 들어오게 된 사회적 문맥을 부정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 신설조항을 정면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당화의 놀음,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말장난은 딱 맞는 논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연한 시간낭비, 시민의 혈세낭비에 다름 아니다. 이 말장난이 신설조항에 대한 정면 부정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역으로 ‘차별’과 ‘공정’이란 말을 두고 그 사전적 의미를 따지는 희안한 경연(?)이 벌어졌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김재노 의원(한나라당)이 나서고 박문석 의원(민주당), 최성은 의원(민주노동당)이 이 희한한 경연에 참여했다. 각자의 국어 실력을 겨루는 이 경연의 실상을 굳이 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국어시간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진 탓이다. 게다가 이들은 단어만 볼 뿐 문장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 새삼 입법과정에서 말의 의미를 따질 때 요구되는 두 가지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첫째, 말은 사물의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말의 의미는 그 말의 쓰임(use)이다. 즉 말의 의미는 그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말이란 것이 어떻게 사용되는가하는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딴에는 유식한 척 사전적이거나 교과서적 의미를 들이대거나 아니면 ‘내 생각으로는’ 하면서 자의적인 의미를 들이대는 것은 따라서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비틀어대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말의 의미를 배운다는 것은 그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 말의 쓰임을 즉 어떻게 쓰는 말인가를 배운다는 것이다. 으레 ‘심도 있는 심사’가 요구되는 공론장에서 오히려 국어 실력을 뽐내면서 문장을 보지 못하는 시의원들, 그들은 이 배움이 어느 정도일까? 이런 시의원 앞들에서 근거를 대며 반론해야 할 관계공무원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당당하지 못한 태도에 이유를 묻자 “말 못할 그런 게 있다”고 자기변명에 급급하다. 참으로 비겁하다. 양쪽 다 콩과 보리가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결과 “공무원은 공과 사를 명백히 분별하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며, 친절하고 신속·정확하게 모든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는 요구는 “공무원은 공과 사를 명백히 분별하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며, 친절·공정하고 신속·정확하게 모든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업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로 수정되었다.

둘째, 말은 인간이 생각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사적 사실이다.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동물이 말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말하지 않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 인간이 말한다는 것은 밥 먹고 똥 싸고 걷고 쉬고 하는 것과 같은 자연사적 사실일 뿐 생각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이 말한다는 자연사적 사실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은 두 가지 원칙적인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하나는 아리송한 말 곧 말의 애매모호함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의미의 명료함을 요구하는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태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말의 애매모호함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교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며 말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만 말이기 때문이다. 교환이 필요한 까닭은 상품은 교환되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치로 설명될 수 있다.

교환능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체적인 맥락을 벗어나 유식한 척 아이들처럼 사전적이거나 교과서적 의미를 들이대거나 아니면 ‘내 생각으로는’ 하면서 자의적인 의미를 들이대는 태도에서는 이 교환능력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환하지 않고 제 목소리만 내는 것은, 설령 그것이 유토피아에 관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지루한 파노라마’(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그리는 것이며 그들은 ‘유토피아의 독재자’(한나 아렌트)임을 선포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의 쓰임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말의 교환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21일 성남시의회 행정기획위원회에서 본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을 목격했던 플라톤은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나도 정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정치할까? 아니다. 국회의원급만 정치인이 아니며, 정치는 대의정치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정치는 전부에게 달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충고를 귀에 담을 미래의 정치인들, 특히 그 명료한 의미를 새길 시민들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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