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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치 활성화의 지름길

[벼리의 돋보기] 지방의원 유급제, 어떻게 볼까?

벼리 | 기사입력 2005/06/22 [03:59]

지역정치 활성화의 지름길

[벼리의 돋보기] 지방의원 유급제, 어떻게 볼까?

벼리 | 입력 : 2005/06/22 [03:59]
사람마다 보는 눈이 층하가 있듯이 지방자치를 보는 눈도 그런 것 같다. 가령 민주노동당 노희찬 의원이 20일 지방의회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없이 지방의원 유급제 도입에는 반대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는데 몇몇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면서 ‘희화화’했다. 역겹다. 더러운 패러디의 느낌을 받는다.

기사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헤드라인이다. 또 기사독해에서는 기사의 핵심을 담은 리드문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 지방지에 보도된 기사를 보자. 그 기사는 노 의원의 보도자료에 근거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드라인은 “지방의원 유급화 땐 한해 1900억원 소요”였고 리드문은 “지방의원들에게 부단체장급 수준의 급여를 줄 경우 매년 1천900억원 가까운 추가예산이 소요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였다. 굳이 해설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바로 희화화다.

이는 비형식논리학에서 말하는 ‘논점회피의 오류’의 전형적 사례다. 논점회피의 오류란 말 그대로 논점을 피해가는 것인데 노 의원의 주장이 이렇게 희화화된 것은 둘 중 하나다. 지방자치에 대한 언론의 '무지'이거나 언론의 의도적인 '비틀기'이거나. 아마 후자일 것이다. 그럴 경우 그 바탕에는 제도로서의 지방자치의 한 축인 지방의회를 '졸'로 보는 발상이 깔려 있다. 아직도 이 나라의 언론이 이 모양이다.

참고로 노 의원이 지방의회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의 영역에서 지적한 것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지방선거관련법소위가 지난 15일 가진 비공개간담회에서 제시한 ‘패키지’다. 구체적으로 보면  ▲광역의원 비례대표 20%로 확대 ▲기초의원 정당공천 및 비례대표 20% 도입 ▲기초의원 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로 개편 ▲의원정수 유지(비례대표 증가분만큼 지역구 축소) ▲지방의원 유급제 도입 등이다.

이 제도개선 내용들은 어느 것 하나 피할 수 없다. 노 의원이 반대한 것처럼 지방의원 유급제만 뚝 떼어내면 물론 지방선거를 포함한 지방자치제도가 불구가 된다. 그러나 다른 맥락에서 노 의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설령 지방자치제도가 여전히 불구로 남을지라도 지방의원 유급제는 우선 실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볼 때 지방의회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제도적으로 지금처럼 명예직으로 남아 있으면 제대로 못할 경우 꾸짖는 정도에 그친다. 반면 봉급을 받게 되면 제대로 못할 경우 ‘너, 고것 밖에 못해? 관둬!’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민과 함께, 주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제 밥그릇 챙기기에 소심한 편이라 봉급을 줘야 계속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제도에 있지 않다. 바로 주민과 함께 할 사람에 달려 있다. 그들이 변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지방의원 유급제만 중요하지 않다. 똑똑히 기억해두자. 지금과 같은 지방분권화의 흐름이 지속되고 보다 더 확대, 강화된다면 정부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온다는 사실을. 지자체가 '지방정부', '지역정부'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정부들은 가히 ‘작은 정부’라고 부를 만하다. 철저히 지방, 지역, 삶의 현장에 기초한 정부가 바로 우리 곁에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세상, 대안의 사회로 가는 길에서 작은 정부는 피할 수 없는 경로가 아니겠는가.

이러 기대와 전망적 태도에서는 국회의원이 제도적으로 누리는 권리에 버금가게 지방의원들도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이 점에서 지방의원 보좌관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의 지방의원 수준을 고려할 때 식견의 부족을 메꾸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핵심적으로는 정책수행 능력과 관련된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의회 사무국 인사권 독립도 자치단체장이 좌지우지하는 사무국이 아니라 지방의회를 위해 일하는 사무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람 중심으로 지방의회의 문제를 풀어나갈 때 지방의원 유급제, 지방의원 보좌관제, 지방의회 사무국 인사권 독립은 제도적으로 반드시 획득해야 할 핵심과제들이다. 그 동안 지방자치를 고민해온 지방자치학자, 풀뿌리지역운동에서 다 논의된 바 있고 그 필요성과 가치가 충분히 인정된 것이다. 요약하면 이 과제들이 제도적으로 성취될 경우 지방의회는 제왕적 자치단체장이 등장하더라도 ‘한판 붙자!'고 대항할 수 있고, 방향을 못잡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지방정부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민을 위해 일하는 지방정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이런 중요한 과제들을 언제 제대로 고민한 적이 있던가. 국회의원들이 지방분권이라는 대세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책의 큰 틀에서는 그런 지향성을 보이는 지점들은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보면 그들의 진정성은 아직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에겐 정치적 이해관계가 더 먼저, 더 깊이 끼어든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를 염두에 두는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을 때가 아주 많다. 그 정치적 이해관계란 것을 전혀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쳐도 말이다.

정개특위에서 제시한 제도개선의 내용들은 사람 중심의 지방자치, 지방의원 중심의 지방자치를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점에서 지방의원 노릇을 제대로 못하면서 언제나 지방의원 유급제가 될까 하고 중앙의 눈치나 보는 일부 한심한 지방의원들을 생각하면 열불이 난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도 개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캠페인이 너무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제도적으로 잘 구축된 지방의회가 잘 굴러가고 그 제도틀을 활용하면서 제도 안팎으로 활동하는 제대로 된 지방의원들이 많아지면 지역정치, 자치역량의 인력풀이 풍부진다. 지역의 자치단체장을 뽑거나, 지역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지역의 인재를 나라에 바치는 데도 저수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정치의 활성화, 자치역량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죄다 '거꾸로'다. 아래로부터 성장한 정치인이 극히 드문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꼴, 지역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지방의원이 맹하다거나, 무식하다거나, 어디에 엮였다거나, 어깨에 힘주고 다닌다거나, 동네유지 노릇이나 하고 다닌다거나, 공무원이 노가리 삼는다거나, 자치단체장에게 끌려다닌다거나, 하는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지방자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기서의 문제의식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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