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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수가 그립다

[벼리의 돋보기]부실한 정치인, 부실한 공무원

벼리 | 기사입력 2006/02/12 [19:17]

삶의 고수가 그립다

[벼리의 돋보기]부실한 정치인, 부실한 공무원

벼리 | 입력 : 2006/02/12 [19:17]
나약한 인간이 있다. ‘삶의 하수’라 부르면 딱 맞겠다. 그렇다면 강한 인간은 ‘삶의 고수’라 부를 수 있겠다. 나약한 인간, 강한 인간의 결정적 차이를 니체는 떼거리, 떼거리의식에 기대느냐, 기대지 않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니체는 약한 인간을 노예로 조롱했다. 노예는 자기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노예는 고작 말이나 할 줄 아는 동물이라던가.

떼거리, 떼거리의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 세상이 떼거리이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는 많은 떼거리들이 있다. 국가, 군대, 지역공동체, 회사, 각종 공사의 모임, 가족이 그런 사례이겠다. 심지어 나라는 개인조차도 실은 떼거리다. 살펴보면 남에게 기대지 않는 개인이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떼거리, 떼거리 의식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접근을 달리할 수 없을까? 떼거리로부터 나를 접근하는 방향이 아니라 나로부터 떼거리를 접근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떼거리, 떼거리 의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마냥 휩쓸려 가면 도대체 나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나라는 것은 남을 합친 것 이상, 특히 남과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또렷하게 남는 것이 있다. 남과 다른 무엇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분명하다, 나를 세상과의 대면에서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다. 철학적(존재론)으로 ‘유아론자’ 또는 ‘이기주의자’로 부를 수 있겠다. 존재론적으로 물질을 1차적으로 보고 정신을 2차적으로 보는 입장을 유물론이라 하고 그 반대인 경우를 유심론(=관념론)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의 고수는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 고수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한 우물 파는 사람 곧 한 길을 걷는 사람을 삶의 고수라고 부르기엔 적절치 않다.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길을 가든, 두 길을 가든, 길을 바꿔 몇 갈래의 길을 가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갈 때 비로소 그를 삶의 고수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맥락에서 말한다. 삶의 고수들이 나서야 할 분야에 삶의 하수들이 지나치게 득시글거린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행어 ‘개나 소나’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천민자본주의라서? 사람 키우는 일을 산업전사 수준에 맞추는 교육 때문에? 끊이지 않는 색깔(이념)다툼 때문에? 정서적·문화적 차이를 불가역적(不可逆的) 대립으로 환원하는 지역주의 때문에? 다 맞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 밖으로부터 구하는 이유들이다.

안으로부터 그 이유를 구하면 다 자기 탓이다. 내가 부실해서다. 내가 부실해서 온갖 밖의 부실이 끼어들고 증폭되면서 내가 없고 내 살림살이가 부실해지고, 급기야는 떼거리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한다. 사회가 시급하게 또는 깊게 해결을 요하는 분야들,  이런 분야들에 바로 삶의 고수들이 나서야 한다. 삶의 고수가 남들 앞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문제와 문제의 해결에 있는 것이다.

삶의 고수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들이 움직일 때는 더 말할 게 없다. 삶의 고수들이 나서야 할 자리에 어쩌다 요행으로 끼어든 하수들은 굳이 돋보기를 들이밀지 않아도 잘 보일 수밖에 없다. 하는 짓이 하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개판을 치는 일부의 정치인들, 일부의 정치공무원들이다. 개판을 치면 반드시 당하게 되어 있다.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정해진 이치다.

지난 4일 한나라당 임정복 도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그의 책이 유권자들에게 불법 배포되는 일이 성남투데이에 덜미가 잡혔다. 기사화되었다. 임 의원에게 최선의 도리, 최선의 방책은 고개 숙이고 반성하는 것이다. 저지른 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고 다신 하지 않으면 딱 그만이다. 그런데 오히려 성남투데이에 항의를 한다. “너무하다”고? 얼토당토 않는 소리 집어쳐라.

최근 한나라당 강선장 도의원이 수정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권한남용 문제로 정치적 구설수에 올랐다. 제대로 된 지구당 운영이 지역정치역량 강화와 지역정치 성숙에 키워드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민주적인 지구당 운영사례로 역시 기사화를 했다. 문제가 있다면 고치면 된다.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성남투데이에 “지역언론이 지역정치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맙소사!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일부 직업공무원들이 지난 5일 영남향우회장 취임식에 대놓고 참석했다. 영남지역주의로 움직이는 일부 공무원 떼거리다. 그들의 떼거리의식? 바로 “우리가 남이가!”다. 공직사회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이로 인한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그 사람들, 무섭다”는 것이다. ‘광풍(狂風)’ 앞에서 안팎으로 한숨과 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치공무원들이 죽어야 공직사회가 산다, 정치공무원들이 죽어야 성남이 산다. 죽어라.

정치인들, 직업공무원들, 그들은 삶의 고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삶의 고수로서 우뚝 서야 할 사람들이다. 남들 앞에 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요구받는 위치와 역할에 합당해야 지역정치가 살고 지방자치가 살기 때문이다. 부실해서 당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지만, 피해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는다. 저만 죽는 것이 아니다. 지역정치, 지방자치가 부실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정치적 소신과 식견을 밝혀야 할 자리에서 아부하듯 절이나 하고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로 삼아 유권자들, 당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퇴행적인 짓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 시민의 공복임을 자랑삼아 정치바람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도 떼거리로 세를 과시하거나 얼굴 파는 정치공무원들. 그들을 보면 그저 속이 숯검정이 된다.

지금은 다만 삶의 고수가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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