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17대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실험이 시작되었다. '1인2표 정당명부제(이하 1인2표제)'가 바로 그것. 지난 2002년 6월 지방자치선거에서 권역별 정당명부제가 실시된 적은 있지만, 명실상부한 정당명부제인 1인2표제의 실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인2표제가 실제 보여지는 바는 지역구 지지후보에 한 표, 지지정당에 한 표를 찍는 것이다. 투표할 때 지지하는 지역구후보 따로, 지지하는 정당 따로 찍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유권자의 책임이 더 요구된다. 1인2표제가 요구하는 유권자의 책임은 곧 사람 따로, 정당 따로 보라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이번 총선부터는 지지후보 선택에서 당이 아닌 사람 보고 찍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 중요성이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는 일단 당이 없는 무소속 지지자들이지만 무엇보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중 하나를 지지할 생각이 있는 유권자들이다.
이들 유권자는 이른바 '진보'에 대해 체험으로 접해보지 않았거나, 또는 달가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겠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양적인 다수를 차지해 표심을 좌지우지하지만, 기성정치인들이 이들 유권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접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선 당이 아니라 사람 보고 찍는 일이 어느 지역, 어느 당은 깃발만 꽂으면 당선 OK라는, 이른바 '막대기표' 작살내는 데 부디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특히 얼치기 계층적 취향이나 지역분열주의에 기대 선거를 치르려는 당은 이 참에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 이번 총선부터는 지지정당 선택에서 당 자체를 보고 찍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 당 자체를 보고 찍는 일은 지지정당이 낸 후보가 누구인가와는 아무 상관없다. 단지 내가 지지하는 정당만 꽉 찍으면 된다. 유권자는 지지정당 선택에서 정당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책이 괜찮은지, 나와 맞는지를 판단하면 그만이다.
1인2표제의 도입 취지도 바로 당을 보고 꽉 찍자는 데 있다. 비록 지지한 지역구후보가 낙마하더라도 지지정당 투표를 통해 거둔 전체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전국구 의원수를 배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1인2표제는 기성정당으로 표가 쏠리는 이른바 사표심리를 상당히 없앨 수 있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노당이 1인2투표제에 큰 관심을 나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지지정당을 꽉 찍는 일은 성남에서 그 최대의 수혜자가 민노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관점의 수혜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민노당이 어떻게 지역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과 관련해 민노당이 지역에서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또 지역정치의 장이 제대로 된 진보와 보수 사이의 경쟁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민노당은 비판과 대안보다 한 차원 높은 수권의 기술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